나를 살린 하루 30분, 온전히 식사하는 시간(1)
나를 살린 하루 30분, 온전히 식사하는 시간(2)
무려 15년이었다. 그동안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친구나 가족들과 외식 약속을 잡을 때면 그들은 항상 내게 물었다.
"지금 못 먹는 음식은 뭐야? 무슨 다이어트 중이야?"'
음식을 보면 영양성분, 칼로리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의학대학을 다니던 당시 남자친구와 영양학으로 논쟁을 할 수 있을 만큼 다이어트, 건강 관련 책을 수십 권 읽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새로운 다이어트 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여지없이 되돌아온 60킬로대의 몸무게와 수많은 길티 푸드였다. 식사 시간이 무서웠고 밤이 되면 또 배가 고플까 봐 두려웠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온종일 음식 생각, 다이어트 생각뿐이었다.
하루는 사소한 친구들과의 약속을 앞두고 전신 거울 앞에 앉아 펑펑 울었다. 살이 도로 찐 내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싫어서 죽고 싶었다. 도저히 문턱을 넘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한다며 유난을 떨고 언제나 원상 복구되는 내 모습을 남들이 비난할까 봐, 실제로 나를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도 스스로 만들어낸 생생한 상상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첫 다이어트는 고2 때였다. 교실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그림만 그리던 나의 별명은 '빵떡냥'.
둥글둥글 볼살이 빵빵한 데다 매일 뒷자리에서 빵 봉지 소리를 내는 오타쿠에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심지어 '남자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연예인 외모 품평을 하며 그들의 춤을 따라 추며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연스레 미디어에 나오는 셀럽들을 선망하게 됐다. 아이돌들의 이름을 줄줄이 꽤고 그들의 노래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리고 평범한 몸무게인 내가 처음으로 뚱뚱하다고 느껴졌다. 무같은 다리는 너무 뚱뚱했고 쌍꺼풀 없는 눈은 평범했다. 하체에 비해 덜 찐 상체 덕에 얼굴이 더 커 보였다. 첫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빵과 떡, '빵떡냥'도 안녕!
학교를 가기 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었다. 한 달 만에 무려 7kg을 감량했다.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던 오타쿠 1인은 갑자기 학교에서 반짝 스타가 되었다. 옆 반에서도 찾아와 어떻게 다이어트를 했냐고 물어봤으니. 친구들은 살을 빼니 당시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을 닮았다고 했다. 김연아를 닮았다고도 했다. 친구들에게 받은 첫 관심은 짜릿하게 뇌 깊숙이 박혔다.
수능을 망치고 입학한 첫 '남녀공학' 대학교 입학하며 '외모'는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특히 '이쁘고 날씬한 여대생'은 공부를 잘하고 능력이 좋고 돈이 많고 등의 부가 능력치들과 압도적으로 비교되지 않는 가장 중요하고 탁월한 권력이었다. 20대가 되고서는 매년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굶기, 원푸드 다이어트, 3시간 이상 러닝머신 타기, 장기 단식, 채식, 채과식, 거꾸로 먹기, 키토 제닉, 간헐적 단식 등등..
일명 '다이어트 척척박사'가 되었고 매년 새해, 혹은 여름이 다가올 때마다 10kg 가까이 감량을 했다. 어떤 다이어트든 대부분 빠르게 단기간에 감량했지만 몇 주가 되지 않아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나는 의지박약 실패자였다. 수능도 망쳤는데, 외모로도 승부를 볼 수 없는. 다이어트조차 해내지 못하는.
다이어트가 무조건 패배하는 승산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안 것은 다이어트로 20대를 허망하게 날린 끝에 30대에 들어서였다. 이제 정말 마지막 다이어트라며 동생의 결혼식에 앞서 무려 15일 단식을 하고 다 극복한 줄 알았던 일명 '먹토'를 다시 겪으며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드디어 포기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또또또 또다시 살이 찌는 건 15년간 머릿속에 굳어져온 가장 두려운 일이었기에, 한때 유행했던 일명 '소식좌'를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지킨 법칙은 딱 세 개였다.
1. 밥 먹을 때 미디어 시청하지 않기
2. 스톱워치를 재며 한 입당 1분 이상 먹기
3.20분 이상 천천히 식사하기
그리고 이 세 가지 법칙은 다이어트에 점령된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한 번도 다시 섭식장애 증상이 올라오지 않았고 더 이상 먹는 행위가 두렵지 않게 됐다.
소식 습관을 만든 지 5개월 차, 심지어 먹는 게 귀찮아졌다.
2-3개월까지는 조금씩 다시 살이 붙었지만 4-5개월 차, 먹는 게 귀찮아지는 단계까지 가자 다시 체중이 점차 감량되는 게 체감됐다. 꽉 끼던 바지가 널찍해져서 쌀쌀해진 날씨에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고 거기다 꽉 끼던 그 바지를 한 겹 더 입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두렵지 않았다. 원하던 음식은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외모, 다이어트에 대한 가치관이 점차 바뀌었다. 아니 그냥 관심이 점점 없어졌달까? 내 인생은 음식과 다이어트가 아닌 더 중요한 것들로 채워졌다. 유튜브를 시작했고 소식 습관을 만들어줄 앱을 개발하고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인 '자유'를 고작 이 3가지를 지키고 습관을 만들며 찾아낸 것이다. 지금부터 어떻게 이 습관을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