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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소식좌' 식사법

나를 살린 하루 30분, 온전히 식사하는 시간(2)

by 기모냥

몇 번을 다이어트를 실패하고도 또 기적의 다이어트 법을 찾는다고?

스위치온 다이어트, 키토제닉, 단식등 새로운 다이어트 법을 시도한다고?

하하 저도 그랬습니다만..


지금까지 5개월 동안 소식좌들을 따라 하며 일명 '소식법'을 실천해 왔다. 사실 소식좌들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조차 그들의 '태생적인 마름' 체질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서였다. 내가 지킨 것은 단순한 3가지

1. 밥 먹을 때 미디어 시청하지 않기
2. 스톱워치를 재며 한 입당 1분 이상 먹기
3. 20분 이상 천천히 식사하기

그리고 소식법을 실천한 지 3개월 차 가장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먹는 게 귀찮아졌다는 것.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설탕, 탄수화물은 철저하게 금지된 음식이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카페에 갔다. 디저트를 시켜놓고 아무도 손을 데지 않는데, 나는 그 케이크가 눈에 밟혀서 대화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디저트 앞에서도 담담한 친구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이 말랐던 마르지 않았던. 빵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나만 정상이 아닌 것만 같았다. 또 한 번은 다이어터 유튜버들이 케이크를 코앞에 두고 수다 떠는 영상을 봤다. '케이크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안 먹을 수 있냐'는 댓글에 좋아요가 엄청 달았다. 바로 내 심정이 그랬다.

스크린샷 2025-03-23 오후 3.31.09.png


그러나 소식법을 실천한 지 3개월이 지나자 내게는 4가지 변화가 생겼다.


변화 1. 먹는 게 귀찮다.


지금도 밥보다 빵을 선호하는 디저트 중독자인 '빵떡냥'인 나는 카페에 가서 거의 매일 디저트와 빵을 함께 주문한다. 그런데 이젠 허겁지겁 디저트를 먹어치우지 않는다.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수저를 놓게 되었다. 심지어 남기고 올 때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아무 때나 배가 고프면 당장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한다. 할 일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은데 한 시간씩 앉아서 밥 먹고 있는 게 솔직히 좀 귀찮거든(?)

요즘 매일 먹는 식단


변화 2. 칼로리? 탄수화물? 그게 뭐예요?
스크린샷 2025-03-23 오후 3.33.13.png 칼로리? 그게 뭐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또 있다. 음식을 고를 때 더 이상 칼로리를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그런데 탄단지 비율은 생각한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또 금방 배고파져서 또 먹으러 부엌까지 내려가는 게 귀찮기 때문.


변화 3. 먹고 싶은 것만 먹기


그리고 배가 고플 땐 진짜 당장 당기는, 먹고 싶은 걸 먹는다. 그래야 몇 입 먹고도 만족스러워서 얼른 자리를 뜰 수 있다. 음식만 보면 눈이 뒤집혀서 먹을지 말지 고민하다 결국 음식에 져서 배가 터질 때까지 폭식을 하고 그러다 화장실에 달려가기도 하고 죄책감에 잠 못 들던 날들과 비교하면..

대체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가 있다고?


변화 4. 배부름 호르몬 정상화

가장 긍정적인 점은 자연스레 배가 부르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된 점이다.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먹는 게 귀찮아지는 단계까지 오다 보니 배가 어느 정도 차면 자연스럽게 더 이상 먹지 않게 된다. 스스로 절제하는 게 아니라 몸에서 만족하는 신호가 저절로 올라오고 더 이상 딱히 먹고 싶지 않다. 허기가 최고의 조미료이듯이 배가 고파야 또 100번씩 씹어도 맛있게 들어가거든.


결국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식사를 훨씬 만족스럽게 할 수 있고 자연스레 수저를 놓을 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곱씹는다는 게 이런 효과를 가져올 줄 정말 몰랐다.


그렇다고 체중이 막 드라마틱 하게 감량되거나 하진 않았다. 아직 음식과의 관계가 완전히 건강하진 않기 때문. 금주하고 나서 술 생각이 안 나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 그보다 더욱 오래 심각한 관계를 유지했던 중독적인 음식들과 평범한 관계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서서히 차근차근 감량이 되는 건 몸무게를 재지 않아도 체감된다!)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거나, 지루할 때면, 그리고 감정이 격해질 때면 떡볶이, 빵 과자.. 자극적인 음식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1년을 지속한다면 음식과의 관계가 더 이상 실패와 패배감으로 가득한 관계가 아니게 될 거란 확신이 든다. 그땐 정말 소식좌들처럼 바닐라 라테 한잔으로 만족하게 될지도..? 최근 3개월 동안 내 뇌가 '먹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야'라고 다시 학습하고 있기 때문.

소식좌4.jpeg 소식좌는 아바라 한 잔을 끼니로 때운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천천히 씹어 먹을 때 우리 몸은 포만감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한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는 데는 평균 66일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식습관을 오래 지속해서 하지 않으면 어색해지는 단계까지 가면 정말 소식좌들처럼 살기 위해 먹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제까지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폭식을 하는 이유는 식품 산업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탄단지 비율의 달고 맛있는 자극적인 음식들 때문이라고. 물론 100%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음식들을 딱 먹는 순간의 도파민은 더 자극적인 음식들을 당기게 한다. 하지만 그래서 인간의 몸이 자극을 추구하는 걸 이용하면

쉽게 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자극적인 음식들도 오래오래 음미하며 씹어 먹다 보면 정말 지루해지기 때문.


소식법을 하며 식사에만 집중하다 보면 뇌가 미각에 집중하기보단 어떻게든 집중할, 재밌는 딴짓 거리,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선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 뇌의 보상회로는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찾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파민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닌, 그 음식을 기대할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첫 입은 엄청 맛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점점 덜 맛있어지는 것이다.


혹여 먹는 걸 못 멈추겠다면 그 음식을 100번, 혹은 1분이 넘도록 씹어보길. 생각보다 음식이 맛없고 먹는 행위가 지루하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평소보다 과식을 할 때는 거의 백 퍼센트 남편과 같이 밥을 먹을 때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다 보면 미각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화하면서 먹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첫 입의 도파민이 터지고 씹는 도중에는 미각이 아닌 대화에서 오는 도파민이 터지고.. 식사시간 내내 도파민 파티!

스크린샷 2025-03-23 오후 3.39.09.png

이렇게 두 가지 자극이 번갈아 들어오면서 우리 뇌는 계속해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사 시간도 길어지고, 먹는 양도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소중한 시간조차 금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부부는 매끼를 함께 먹기보다는 본인이 배고플 때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언제나 먹고 싶을 때 강박 없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우연히 타이밍이 맞으면 남편과 수다를 떨며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최근 상하이로 여행을 갔다. 놀랍게도 오르지 ‘먹고 마시는 것’에서만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우리 부부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바로 이전 여행이었던 보홀에선 완전히 달랐다. 여행 3일 차에 금지된 음식인 피자 한 입으로 입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는 피자 두 판과 과자 6 봉지, 초콜릿 한 통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스스로가 미친 것 같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어차피 이날은 망했으니까 괜찮다며 호텔을 나와 참고 참았던 망고 빙수까지 한 대접까지 해치웠다. 배가 불러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IMG_0542.HEIC 애증의 망고빙수. 진짜 맛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날로 끝이었을까? 그다음 날도, 결국 보홀을 떠날 때까지 참지 못하고 먹었다. 여행 후반부는 어느새 먹기만을 위한 여행으로 바뀌었고 죄책감과 후회로 점철된 여행 끝엔 결국 사진도 한 장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상해 여행에서 하루에 만보에서 삼만보를 걸으면서 그저 먹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로 전락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덕분에 상해는 인생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 다른 여행지들도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르지 먹는 것과 이놈의 살에만 집중하느라 인생에 다지 오지 않을 소중한 경험과 기회들을 날려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많은 분들이 음식뿐만이 아닌 다른 많은 것에서 삶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24시간 음식과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더 귀중한 가치를 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길 바라며.


다음 장에서는 그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오래 씹어 먹었는지(?) 그 실천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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