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혹시 연말 약속들로 꽉 들어찬 일정에 불안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할로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진 연말 행사로 집 안 곳곳이 쓰레기장으로 변하진 않으셨나요?
지금 저는 연말이라는 아주 거대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제주도 시골에 처박혀 살던 저도 연말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돌려보고 '나 홀로 집에'를 뒷배경으로라도 틀어 두지 않으면
마치 올해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편입니다
남편과 저는 연말이라는 핑계로 주말 내내 영화를 보고, 잔뜩 장을 보고, 외식을 하고
한 달에 1~2번 먹을까, 말까 하던 배달 음식을 일주일에 4번이나 시켜 먹었어요
갑작스레 추워진 탓에 부피가 큰 겨울옷을 꺼내고 여름옷을 정리할 시간도 없어서
집안 꼴은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 됐죠
정말 맞는 말입니다
이번 한 해도 힘겹게 버텨온 우리는 분명 그럴 권리가 있죠
이미 다이어트를 15년 동안 해오며 연말마다 이런 합리화를 해오지 않았다면 말이죠
오랜 시간 다이어트를 해온 제 뇌에 깊게 새겨진 무의식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마주칠 때마다 흥분해서
폭식 충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강박 없이 먹기로 했잖아'라며 나를 다독이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으로 파티 아닌 파티를 즐겼습니다
이렇게 12월 내내 제 감정에 휩쓸려 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당장 집 나간 정신줄을 동여맬 무언가가 필요했죠
문득 예전에 도서관에서 운명처럼 마주쳐 아주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시리즈가 생각났습니다
그건 바로 '도미니크 로로' 작가의 『심플하게 산다』시리즈였습니다
다시금 나를 다잡아보기 위해 책을 구매하려고 도착한 서점에는
잔잔한 캐럴이 깔려 있었고, 책향기로 가득 찬 서점의 평온함 속에선 이미 책을 손에 쥐기도 전에
제가 추구하던 연말의 모습이 '이런 순간'이라는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심플하게 산다』의 두 번째 시리즈인 '소식의 즐거움' 편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과식 하지 않고 적당히 먹는 식습관의 즐거움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부사를 하나 붙여 주고 싶어요
바로 '우아하게' 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를 맞아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뷔페라는 곳에 갔었어요
그곳엔 제가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한 환상적인 음식들이 잔뜩 쌓여있었죠
엄마와 저는 미리 소화제까지 먹고는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잔뜩 즐겼습니다
그래서 뷔페는 저에게 생각만 해도 설레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어요
하지만 다이어트를 한 후부터는 너무나 두려운 장소로 변해 버렸죠
'이번엔 꼭 적당히 먹어야지' 결심하지만 언제나 폭식을 해버리는 제 자신을 절대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뷔페에서 잠시 일을 한 적 있었는데요
당시에는 가격대가 꽤 있는 뷔페였는데, 평일 점심에 가끔 찾아오는 여자 고등학생이 있었다고 해요
근데 그 여학생이 항상 와서 샐러드 조금, 빵 몇 조각 정도만 먹고 가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부잣집 딸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난무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는 그 여학생이 부자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1도 없었어요
그냥 뷔페에서 우아하게, 적당히 배가 찰만큼만 즐길 수 있는 그 여유로움이 참 부럽더라고요
우리가 폭식을 하거나 과식을 할 때의 모습은 어떤가요?
적어도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게 보이겠죠?
『심플하게 산다 2』에서는
적당히 먹는 우아한 습관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해줍니다
- 요리를 하는 동안은 먹거나, 마시지 말자
- 절대 냉장고나 천장에서 꺼낸 음식을 그대로 먹지 말자
- 항상 접시나 대접에 덜어서 차려 먹자
- 가벼운 스낵이나 할지라도 그 시간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앉아서 먹자
천천히 먹는 습관은 열심히 지키려고 정말 노력했지만 제가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더라고요
요즘은 일을 하다 허기가 지면 허겁지겁 부엌으로 가서 일단 입에 당근이라도 집어넣고 식사를 준비했어요
식사를 하는 시간도 시간에서 30분 이내로 줄어들었죠
할 일이 너무 많고, 신경 쓸게 아주 많은 바쁜 연말이니까요
그런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하면 항상 냉장고에서 무언가 꺼내 먹게 되더라고요
가공식품을 손에 잔뜩 들고는 서성거리며 급히 먹어 치우고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다 크로스핏을 마치고 온 저녁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남편과 함께
연말이라는 핑계로 만찬을 차리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죠
『심플하게 산다2』소식의 즐거움 '천천히 오래씹기' 챕터 중 일부 발췌
나의 몸을 자연의 성전으로 만들라
음식이 눈앞에 놓였을 때 코로 맞이하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몸이 그 음식에서 최상의 것을 취할 수 있도록 하라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음식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먹는 방법이다
소란스러운 곳에서 허겁지겁 먹거나 불쾌한 환경에서 대충 때운 식사는 몸과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자고로 건강과 행복은 오감이 느끼는 즐거움에서 비롯된다
과식할 때 그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오감이 살아나지 못해서이다
우선 아주 작게 한 입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 연습부터 하자
그리고 가능한 한 오래 씹어라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맛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둘러 먹느라 먹는 즐거움을 아주 잠시밖에 즐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먹는 즐거움을 최대한 오래 지속시켜라
씹을 때야말로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그러면 과식도 덜 하게 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직접 요리를 하고, 정갈히 담아내, 천천히 음미하는 소박한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가공식품이 아닌 건강한 재료를 선택해서
여유롭게 한끼를 즐기는 그 순간의 가치를 느껴 보라는 것이죠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따뜻해지지 않나요?
저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이번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과식을 걱정하지 않고 여유롭게 음식을 음미하는 시간
우선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주변에 스캔하며 쓰레기장 같은 방은 물론 냉장고까지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냉장고를 열면 저도 모르게 손이 가는 대로 정신없이 먹게 되는 가공식품들은
남편 뱃속으로 얼른 치워 버렸어요
정리를 마치고, 따뜻한 히터와 연말 무드의 조명을 켜고, 캐롤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차 한잔을 우려내며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쳤어요
마음 속 깊숙히 완벽한 행복감이 밀려오더라고요
냉장고에는 이번 연말에 정말 먹고 싶은 음식들과
몸을 데워주고 마음을 건강하게 해 줄 한 끼를 위한 재료들만 남겨 두었죠
곳간 가득 도토리를 채워둔 겨울 다람쥐처럼 든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싶다가도
집 안 곳곳에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새해를 맞이할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두었더니
올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파티 같은 연말도 좋겠죠
하지만 잦은 약속이나 폭식으로 피로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면
이번에는 고요하고, 아늑한 나만의 연말을 보내 보는 건 어떨까요?
정신없었던 올해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내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