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용기의 무대 -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내가 어떤 것에 유난히 '절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지를 살펴보라고 하더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일에는 못하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고. 나에게는 출간이 그렇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는 건 어디 말도 못 하겠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인 것 같다. 진짜로 원하는 거. 말을 꺼냈다 실패하면 쪽팔리고 슬퍼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거.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위이다. 꼭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어도, 소설과 시, 시사평론은 물론이고 요리 레시피, 블랙박스 설치법 안내문에조차 글 쓰는 사람의 시선과 성품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에 대해 말하고 싶을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의 글쓰기는 이렇다. 어찌할 바 모르게 슬퍼지는 날, 머릿속에 떠다니는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토해낸 후에 순서를 짜 맞춘다. 얼기설기 엮은 구절들은 두서없을 때가 더 많다. 기승전결도 의도도 알 수 없는 문장 더미를 한참 '저장 글'에 묵혀두다 보면 그것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인생의 어떤 사건에 대한 감상이 오래된 반쪽짜리 글을 완성해 줄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잔뜩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끄트머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이 실을 잡고 풀어내면 마음에 박혀있던 유리조각들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쓴 글을 나중에 읽어보면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다. 현실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내밀한 이야기를 잘도 털어놓는다. (아마 이 글도 높은 확률로 부끄러워질 것이다)
글쓰기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밑천을 공개하는 일이 된다. 곧 부끄러워질, 금세 주워 담고 싶어질 자신을 내보이는 일. 언제든 발행을 취소할 수 있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에도 몇 번을 고민하는 나로서는 회수할 수 없는 한 뭉치의 종이에 자신을 기록하는 일이 어떤 느낌일지 가늠이 안 된다.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은데 이미 인쇄가 끝났다면, 그때는 어떡해야 하죠... 나라는 인간이 유독 부족하여 이런 생각이 드나 싶어 북토크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간 작가님들께 여쭤봤다. 실례가 아니라면, 혹시 책에 실은 내용이, 적어버린 문장이 후회된 적은 없으셨나요. 정말 빠짐없이 모든 분이 '후회된다'라고 답해주셨다. 다시 쓰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 발간 후에 후회하더라도 다음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때의 생각은 그랬어요, 지금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고 다시 또 말하는 수밖에 없다고.
브런치 계정을 시작하며 '작가'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스스로 작가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시선과 문장력을 가진, '글로 밥 벌어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써야 하는구나. 나는 절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 그러나, 글로 밥 벌어먹어야만 작가라 불릴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결국 용기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이해하는 세계의 밑천을 드러낼 용기. 자아의 한 조각을 평가대에 올려놓을 용기. 쏟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물병을 가득 채워내는 용기. 결과에 대한 날 선 피드백을, 혹은 그보다 두려운 무관심을 마주할 용기.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할 용기.
용기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 속에서 커다란 즐거움과 위로를 얻고 있다. 언젠가 나도 작가라는 호칭에 부끄럽지 않을 만한 용기를 갖고 싶다. 내 밑천을 탈탈 털어낸 부끄러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10주년을 맞은 브런치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수많은 용기의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자신을 이야기하는 모두의 용기를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