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고 시끄러웠지만 여기는 다행히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머쓱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던 아침. 학생들은 한 시간 늦게 등교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기존 등교시간인 8시가 되자마자 한 학생이 찾아왔다.
Y야 왜 벌써 왔어?
- 선생님 오늘 학교 안 오는 날이에요? 왜 애들이 아무도 없죠?
오늘 태풍 때문에 한 시간 늦게 등교하잖아. 못 들었어?
- 네 저 전혀 몰랐어요. 왜 몰랐지?
(웃음) 어제 종례 때 선생님 말씀 제대로 안 들은 거 아냐?
- 아닌데…. 혹시 애들한테 서로 전달해주라고 했는데 애들이 저만 빼놓은 건 아니겠죠?
아냐 전체 공지로 나갔을 거야.
- 그럼 저는 왜 몰랐죠? 애들은 왜 나한테는 얘기를 안 해줬지? 나 왕따인가?
한참을 ‘애들이 나한테만 이야기를 안 해준 것 같다’며 걱정하던 Y.
- 아! 저 어제 조퇴했어요. 담임선생님이 종례 때만 말하고 톡방에 따로 공지를 안 해서 제가 못 들었나 봐요! 아 다행이다. 휴.
그때 그 “다행이다”가 나한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공지를 못 들어서 한 시간 일찍 출근했는데 동료들이 나한테만 일부러 말 안 해준 게 아니라 그냥 공지가 누락된 거였다는 걸 알게 된 상황에서 나라면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 화가 아주 잔뜩 났겠지. 한 시간 더 잘 수 있었는데 날렸다며 투덜댔을 거다. ‘내가 왜 공지를 못 들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청소년기에는 친구관계가 중요하잖아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인데, 저 순간의 “(친구들이 나한테만 얘기 안 해준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를 듣고 나니 나는 청소년기에 친구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Y가 느끼는 친구의 중요성, 관계에서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확신의 중요성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내가 한 시간을 일찍 나왔든 말든 친구들이 일부러 나를 빼놓은 것이 아니라면 다행인 것이다.
그게 다행이구나.
나도 저 나이 때는 그게 다행이었나? 누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지, 누구와 어떤 비밀 이야기 까지를 나누는지가 제법 중요했던 어느 때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 그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연락 오는 사람 하나 없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나. 아니면 그냥 서로의 삶에 바쁜 것이 익숙해진 걸까. 모르겠다. 내 관계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친구관계로 고민하는 걸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아 물론 지금도 진지하게 듣고 있긴 하다)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관계가 세상의 거의 전부인 때도, 혹은 사람도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