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 이번에는 정말 달라요. 얘랑은 미래를 이야기하게 되고, 저한테 확신을 줘요.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만난 지 얼마나 됐니?
- 한 2주 정도?
2주 만에 ‘확신을 주고’, ‘미래를 이야기하게 되는’, ‘이번엔 다르다고 느끼게 하는’ 사랑이라. 애들은 사랑을 참 쉽게 들이는구나. 우스울 수도 있는데, 부러웠다. 그게 뭐 나쁜가. 분명히 마음이 가면서도 이 사람이랑 안 되는 이유만 만들어내던 바보 같은 나보다 훨씬 낫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확신을 가질 만큼의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그런 게 가능한 나이가 정해져 있는 걸까? 지금보다 어릴 때의 내 사랑을 떠올리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내내 겁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겁만 잔뜩 먹어서는 시작도 못 해봤네.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이유로 혹은 핑계로, 부담스러울 거라며, 배려인 척. 그냥 거절당하는 게 무서운 거였으면서.
H
- 제가 이전에도 헤어져봤지만, 이번에는 정말 달라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못 잊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다시는 이런 사람 못 만날 것 같아요. 이제 사람을 못 믿겠고, 사랑을 더 못하겠어요.
그래 얼마나 만났었니?
- 1학기 시작할 때부터 해서, 백일 정도요.
첫 연애가 떠올랐다.
“시작은 둘이 마음이 맞아야 하지만 끝은 한 명만 마음먹어도 낼 수 있는 거야.”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매정할 수 있나, 나쁜 놈, 싶었는데. 덕분에 ‘선생님도 차여봤는데~’라는 말도 할 수 있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는 나도 다시는 누굴 못 만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나 남은 인생은 길고… 누군가를 만난다. 그 과정에서 ‘아 다음 사람이란 게 어딘가에는 있구나. 더 좋을 수도 있구나.’하는 걸 배웠고, 두 번째 이별에서는 이제 다시 사랑 못 한다며 징징대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덜 아픈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 그 이후로 못 만나고 있음. 어라라) 울면서도 일상을 살아야 해 H야.
J
A는 정말 완벽해요. 예쁘고, 착하고…. 사실 제가 이전에 좋아했던 애들이랑은 좀 다른 느낌이긴 하거든요? 그런데 그냥 얘가 저의 이상형이 된 것 같아요. 걔가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스스로 모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제가 옆에서 매일매일 말해주고 싶어요.
이런 솔직하고 무조건적인 애정이라니. A는 자기가 받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까. 알았으면 좋겠다.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지금이라서 가능한 풋풋한 마음. 나이가 들수록 서로 견적(?)을 뽑게 되잖아 아무래도. ‘이 정도면 괜찮네’ 싶어야 하잖아. 그냥 내가 이상형이고, 내가 나라서 좋고, 당신의 반짝임을 계속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사람이 앞으로의 인생에 있을까. 아, 또 부러워졌다.
R은 이틀 만에 다시 와서는 남자친구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자꾸 싸우게 되는 게 귀찮다고 이야기했다. H는 여전히 간헐적으로 이별의 슬픔에 허덕인다. J는 이상형과의 연애를 시작했는데, 왠지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좋을 때다~라는 말 정말 어르신 같아서 안 하고 싶은데. 너희의 사랑을 보면 자연히 좋을 때라는 생각이 들어.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좀 우습게 보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무 '좋을 때 다 지난 낡은 사람' 같잖아...)
오래오래 품고 살길. 사랑에 빠지는 무모함을, 사랑을 이야기하는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