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Be My Eyes'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battle you know nothing about. Be kind. Always.
위 글을 대충 저장해 두고 잠들었다가 휴대폰의 낯선 알람 소리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Be My Eyes'의 알람이었다. 시각장애인 분이 어플을 통해 영상통화를 걸면 시각적인 정보가 필요한 일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어플인데, 취지가 좋고 신기하다는 생각에 설치하고 봉사자로 등록해두었었다. 그게 두 달 정도 전인 것 같은데 그동안은 알람이 온 적이 없어 잊고 있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받은 첫 통화. 화면에는 방바닥이 보였고 나이 지긋한 목소리가 인사를 건넸다. 라면을 먹으려고 하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라면 봉지를 좀 읽어줄 수 있겠냐고 말씀하셨다. 하나의 짜파게티와 여섯 개의 일반 라면의 이름을 읽어드렸다. 국물이 있는 라면이 드시고 싶으셨다고, 고맙다며 연결을 종료하셨다.
나의 작은 다정이 한 사람이 원하는 식사를 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아침부터 마음이 훈훈해졌다. 점점 진행되는 무인화, 디지털 소외계층, 스마트폰에 목매는 사람들... 을 보며 세상이 복잡해져만 간다고 생각했는데, 발전하는 기술은 다정의 방식을 늘리기도 하는구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원하는 라면을 골라 끓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요청해야만 가능한 일일 수도 있구나. 그때그때 도움을 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물품 포장지에 점자표기를 확대하는 것이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옳은 일을 위해 싸우다 그 싸움에 먹혀버린 듯한 사람들을 본 적 있다. 모두에게 더 다정한 세상을 위해, 더 올바른 세상을 위해 시작한 일이 자신에 대한 다정도, 결국에는 주변인에 대한 다정도 잃게 했다. 마치 영화 초반의 에블린처럼.
우리는 모두 투사가 될 필요가 있다. 라면 포장지에 점자표기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지 나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다정한 세상'에 도착하기 위해서 개인이, 공동체가 겪어야 하는 이보다 더 힘든 일들이 수백수천 개는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싸움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다정을 무기로. 맛있는 베이글을 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