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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Oct 30. 2022

어둡고 어려운 날

    친구의 생일파티를 위해 모였다가 막차를 타고 들어오는 길에 재난 문자를 받았다. 집 근처에 응급실이 있는 대형 병원이 있어서 평소에도 종종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는데, 어제는 평소와 똑같은 그 소리가 왜 그리 무섭게 느껴지던지... 서울 한 복판, 나도 몇 번이나 가봤던 곳에서 일어난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나랑 똑같이 주말 저녁에 놀러 나간 사람들이었을 텐데.... 무분별하게 업로드되는 현장 사진을 보니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팠다. 얼른 잠들고 싶은데, 눈 뜬 아침에는 대체 어떤 뉴스가 있을지 두려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오전 7시 30분, 휴대전화 벨소리에 눈을 떴다. 할머니가 아침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고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고 한다. 왠지 전화가 올 것 같아 벨소리 모드로 바꾸어 놓고 자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초조한 통화를 했을까.


    새롭게 뜬 뉴스, 말도 안 되는 숫자들. 마음이 심란하고, 심장이 빨리 뛰어서 산책을 나갔다. 가을은 평화로웠다. 그러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니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심호흡을 했다.


    SNS발 날 것의 현장 사진들. 모자이크를 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자극적인 뉴스의 보도자료들... 평소 불안이 그렇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조차 그런 것을 보면 '너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주변인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평소 불안이 높던 학생들은 지금을 어떻게 넘기고 있을지 염려스럽다. 내일의 학교가 대체 어떤 분위기지... 고등학생들이라 이 사건을 더 가까이 느낄 것 같아 걱정이다. 평소 신분증 검사가 엄격한 동네라 청소년은 적었겠지...라고 생각(바람)하면서도 걱정이 된다. '대학생 되면 거기 가서 놀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을 수도, 성인인 형제자매가 해당 장소에 다녀왔을 수도, 어쩌면 본인도 있었을지도, 정말 상상하기 싫지만 주변에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줘야 할 텐데 내가 이렇게 유약해서 어쩌나 싶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이 틈을 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혐오발언을 남발하는 사람들도 너무 싫고, 어찌할 바 없이 푹푹 가라앉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또 내일을 맞이해야겠지.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접한 것은 전통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기준에는 들어맞지 않지만, 현재 돌아다니고 있는 현장 사진의 참혹함과 노출 빈도, 사고 현장과의 지리적, 심리적 거리를 고려했을 때 이번 참사는 충분히 우리 모두에게 외상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당분간은 본인의 마음을 세심히 돌봐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심호흡을 하는 것. 지금-여기의 감각을 느끼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 뻔한 말들 같지만 정말로 도움이 된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안정화 기법 안내]
https://www.nct.go.kr/distMental/crisis/crisis01_4_1.do


    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성명서(전문 기재된 기사 링크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03014070325801)가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과 SNS 정보 생산자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과도한 자극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지킬 책임도 있다. '새로운' 정보가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짧은 시간 안에 뉴스를 계속해서 찾아보는 것은 동일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더 진한 충격으로 남을 위험만 커지는.... 관련 소식을 접하는 빈도를 줄이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하는 길일 수 있다. 먼저 나부터 줄여야겠어.... 너무.. 어둡고 어려운 날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분들에게도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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