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때 노래 듣는 건 안 되고 틴더는 돼?" - "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할 수 있잖아"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 세 명의 가족과 '함께' 하면서 루비는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얼마나 깊은 외로움을 견뎌야 했을까.
"나 노래하는 게 좋아. .... 왜 웃어?" - "10대 다워서. 내가 시각장애인이었으면 그림이 그리고 싶었겠네?"
엄마의 마음도 아주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그간 그녀가 겪었을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나는 모른다. 그녀를 시니컬하게 만든 세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비장애인 자녀의 입장이라 그런지, 엄마가 루비의 꿈에 조금 더 친절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루비가 자유로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을 부모님이 가진 장애에 대한 반작용, 반항 정도로 매도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비슷하게, 내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전공하게 된 이유를 우리 언니에게서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금 떠올랐는데, 장애인 복지를 전공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에 언니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남들과는 다른 언니를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때, 어린아이 같은 언니 덕분에 의젓한 척했어야만 했던 때에 나도 모르게 쌓인 상처들이 나를 심리학 서가로 이끌었다. 우울이 예측의 산물이라는 것,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 지적장애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열등감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 모든 일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빛나는 지점이라는 것. 다양한 분과의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정신과 의사들, 상담사들이 쓴 책에서 내가 필요로 했던 다정한 문장들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받은 위로와 다정을 건네주고 싶었다. 수학에 약했고 피를 못 보던 탓에 자연스럽게 의사는 진로 선택지에서 지워졌고, 상담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대입 자기소개서에 썼을 때 한 선생님께서 '너는 스토리가 있어서 좋네'라고 말씀하셨었다. 선생님의 의도는 자기소개서 내용이 알차다는 칭찬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의 그 모든 어려움의 시간들이 '대입용 스토리'로 축약되는 것에 마음이 크게 상했었다. 언니의 장애는 물론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심리학을 처음 접하게 된 것에는 언니의 장애라는 환경적인 영향이 있지만, 그 이후의 선택은 내가 나를 위해 만들어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비가 가족의 장애에 대한 반항이 아닌, 자신의 자유로움을 이유로 노래했던 것처럼.
이 대사를 듣고는 이전의 장면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앞으로도 알 수 없는 세계로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마음은 어떤 걸까. 엄마가 루비의 대학 진학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한 데에는 집안의 유일한 청인을 잃게 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 외에, 사랑하는 딸을 미지의 세계로 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도 있었겠구나.
가족들은 루비의 고등학교 합창공연을 보러 가고, 그곳에서 루비의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청중들을 보게 된다. 공연 장면에서 소리가 사라지며 부모님을 비춰주는 장면의 연출이 소름 돋게 좋았다. 아빠는 집으로 돌아와서 노래를 한번 더 불러달라고 말한다. 노래하는 루비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소리의 진동을 느낀다. 가족과 청인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던 루비가 떠나면 마주하게 될 어려움들과, 딸을 멀리 보내는 안쓰러움, 미안함.... 루비의 노래를 쓰다듬으며 아빠가 흘린 눈물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아빠와 루비를 따라 나도 엉엉 울었다. 영화에 나쁜 사람은 없고 힘든 사람만 있어서. 그게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