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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Jan 16. 2024

Redirect

However, However, However....

    "이걸 읽고 나서 아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사회심리학 대학원에 와도 괜찮을 거예요."

라는 교수님의 추천에 읽기 시작한 Redirect(by Timothy D.Wilson). 대학 교재 외에 영어로 된 책을 내 돈 주고 사 읽은 적이 있었나 내가 과연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일단은 레츠고. 지독하게도 안 읽힐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11일 만에 다 읽었다. 100장 좀 넘는 영어 책 11일이면 오래 걸린 것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과 저의 언어 및 사고체계가 많이 다른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인간의 사고, 정서, 행동에 무엇보다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대원칙을 기반으로, 너무나도 소소하고 가끔은 상식에 어긋나는 듯 보이는 Story Editing Intervention이 사람들의 Self Narrative를 바꿀 수 있음을,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또 중요한 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Self Narrative를 바꾼다는 부분에서 언뜻 시중의 많은 자기계발 서적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모든 면에서 그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Self Help 산업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다. ‘The Secret’을 필두로 쏟아져 나온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류의 자기계발 메시지는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방해하고,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비난하기 때문에 해로울 수 있다. Redirect에서는 이러한 상식에 기반한 (혹은 미신에 가까운) 자기계발 서적의 메시지가 아닌, 심리학적 실험으로 확인되고 검증된 다양한 현상과 개입 방법을 소개한다. 


    그중 인간이 불확실성에 얼마나 취약한 지를 보여주는 실험 결과가 특히 흥미로웠다. 유전자를 가졌다면 언젠가 반드시 발병하고, 발병하면 치료 방법 없이 중년기에 죽음에 이르는 치사유전질환 유전자를 보유했는지 알 수 있다면 확인해 볼 것인가? 어차피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모르는 게 약 아닐까? 실험에서는 헌팅턴 병의 가족력을 가진 사람들을 세 집단으로 나눴다. 나눴다기보다는 나눠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유전자 검사를 받기로 선택하고 헌팅턴 유전자가 없다는 결과를 받은 집단 / 유전자 검사를 받기로 선택하고 헌팅턴 유전자가 있다는 결과를 받은 집단 / 유전자 검사 결과가 확실하지 않거나,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기로 선택한 집단. 그리고 이 세 집단의 우울감과 심리적 안녕감(Well-being)을 평가했다. 


    검사 직후에는 헌팅턴 유전자가 있다는 결과를 받은 집단이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어했다. 당연하다.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과 아닌가.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다시 실시한 심리적 평가에서는 놀랍게도 헌팅턴 유전자를 보유한 집단과 보유하지 않은 집단이 구분되지 않았다. 언젠가 병에 걸릴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하던 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생에 드리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도 6개월이면 옅어진다니 인간의 ‘살아감’이 놀라웠다. 더 놀라운 부분은, 검사를 받지 않은 집단이 가장 높은 우울감과 가장 낮은 수준의 심리적 안녕감을 보고했다는 점이다. 풀이하자면 언젠가 병에 걸릴 것이라고 확실히 아는 사람이 병에 걸릴지 아닐지 모르는 사람보다 전반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최악의 결과라도 결과를 안다는 것 자체로 알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어떤 순간의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위안이 필요한 순간이 없기를 바라지만, 있다면 그때에 꼭 이 실험결과를 떠올리고 싶다.


    다양한 심리학 실험들이 소개되는 가운데 이를 관통하는 저자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책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수많은 'However,'를 함께하는 동안, 상식에 물음표를 던지고, 효과 검증을 위해서는 대조군이 포함된 실험설계를 활용하며, (자신의 가정에 들어맞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항상 제3변인의 영향을 의심하는 연구자의 자세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구나~’의 자세로 살아왔는데…. 책의 내용은 모두 흥미로웠지만 책에 드러난 작가의 시선처럼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대학원에 갈지 말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딱히 가야 할 이유를 못 찾겠는데 그렇다고 안 가자니 언젠가는 이 선택에 두고두고 아쉬워할 것 같다. 이 마음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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