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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16. 2023

백지의 마음으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추수상담 - '올해에는 해보려고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학생의 성격특성과 아동·청소년기에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정서·발달정도를 평가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격특성에 맞는 양육과 교육 정보를 학부모님께 제공하며, 어려움이 있는 학생의 경우 적절한 도움을 받도록 지원하기 위해(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홈페이지 소개글 중 발췌) 교육부 주관으로 매년 행해지는 고등학교 1학년 대상 전체 검사로, 상담교사의 1년을 끌고 간다고도 할 수 있는 핵심 업무이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된 학생들에 대해서는 꾸준 관심과 더불어 재학 기간 내내 추적 관찰, 상담이 권장된다.


    3월은 작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되었던 아이들에 대한 추수상담을 진행하는 달이다. 작년에 특이사항이 있었으니 올해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단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고등학교 1학년 4월에 진행되어 3월 동안의 스트레스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로 쓰이는 것을 고려했을 때, 해당 검사에서 특이한 반응을 보였던 학생들은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신학년 3월에도 스트레스에 취약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혹시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아닌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오늘 추수상담을 한 학생은 작년에 '상담 같은 거 필요 없다'며 검사결과와 관련해서 이야기 나누기를 거부했던 학생이었다. '방과 후에 위클래스에 방문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괜히 명랑한 척하는 말투의 문자를 보내면서도 과연 그 학생이 와줄까 싶었다. 내심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만나자고 했는데 쟤가 안 왔어. 그걸 내가 어떡해. 또 거절당하는 게 무서워서 비겁하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하며 태연한 척했었지만 초임 상담교사였던 나는 학생의 거절에 상처를 받았었나 보다.


    그런데 학생이 왔다. 작년보다 묘하게 밝아진 모습으로. 준비한 말들을 하며 요즘 잘 지내는지를 확인받으려고 했다. 네. 네. 좋아요. 잘 지내요. 수줍음인지 방어인지 모를 미소를 띤 학생의 짧은 대답이 끝나고, '응 이제 가봐도 돼 오늘 수고했어~'하는 조금은 급한 마무리 인사를 하려던 찰나에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제가 작년에는 상담 안 받는다고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한번 받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정말? 반갑다!' 하며 상담 일정을 안내하고 학생을 보낸 뒤 잠시간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작년 내내 칠푼이 팔푼이처럼 무시당해도 굴하지 않고 인사하고 다녔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그 잠깐의 벅참 이후에, 섣부른 마무리를 하려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거절당하는 게 무서워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열린 마음으로 들으려 하지 않았구나. 한 학생을 놓칠 뻔했구나. 나는 참 한참 모자라는구나.


    이렇게나 모자란 상담선생님임에도 '작년에 했는데 좋아서 또 할래요', '올해는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하며 찾아와 주는 학생들이 참 고맙고 예쁘다. 더 용기 있고 담대하게 타인을 경험하는 내가 되어야지. 백지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지. 직업윤리 앞에, 예쁜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가다 보면 어딘가에는 길이 있겠지... 요..?





    방학 동안의 근심걱정 없음 + 개학 후의 현생에 치임...으로 브런치에 정말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구독자분이 생겼다..! 뭔가 엄청 신기한 감정이 든다. 뽀용뽀용한 느낌...? 아휴 어휘력 딸리는 것 좀 봐... 아무튼.. 별 것 아닌 저의 글을 누군가가 실제로 '읽는다'는 게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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