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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와콜라 Nov 22. 2019

걷는 자는 매 순간 새로워진다 (1)

산티아고 순례길, 그 후 10km 정도는 걸어다니는 걷기 예찬론자 

       

  - 2019. 11. 19.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가을입니다. 이 곳 베를린에서 남편은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만든다는 미트볼 파스타(!)를 했구요, 지난 날에는 연어 장(!!), 김치(!!!), 유튜버 아미요 불고기를 만들었습니다.  ‘아미요’ 검색하고 불고기 만들어보세요.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불고기였습니다. 하늘은 높고 저는 남편이 하는 밥을 먹으며 살찌는 계절, 베를린 가을입니다.

  - 오늘은 "걷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걷기 예찬론자 – 하정우안철수무라카미 하루키     



    배우 하정우가 ‘걷기’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합니다. 제목은 ‘걷는 사람’입니다. 하루에 3만 보를 걸으며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별로 기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걷기가 주는 선물은 길 끝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내 몸과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들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도, 미사를 드려도 그냥 그랬습니다. 오히려 아침 일찍 일어나 냄새나는 등산화 사이에 쪼그려 앉아 짐을 싸고 입에 빵 한 조각 물고 걸어가는 그 날들이 좋았습니다. 걷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거든요.     



    걷기는 아니지만, 최근 안철수는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라는 책을 내면서, ‘어쩌면 기능적인 코딩과 같은 교육보다 마음의 리질리언스(resilience)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리질리언스는 우리말로 회복 탄력성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방황할 때, 바닥을 탁 치고 뛰어오르는 능력입니다. 걷거나 달리면 내 몸의 한계를 직시하게 되는데요, 바로 그 지점에서 혁신이 일어납니다. 나를 알면, 그때부터는 꽉 찬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기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저도 한국에 돌아가서 읽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가 긴 여행을 떠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썼습니다. 매일 정해진 거리를 달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하는 그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괜히 허리를 펴고 정자세로 고쳐 앉게 됩니다. 소신 있는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제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그의 다른 에세이 ‘먼 북소리’였는데요, 그는 긴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먼 데서 둥둥 들려오는 북소리’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저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지금, 그의 말에 백 번 동감합니다. 조금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멋져 보이니까, 저도 먼 북소리를 듣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겠습니다. ^^     



    걷기 예찬론자들은 걸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인생을 돌이켜보곤 합니다. 저 역시 순례길을 걸으면서 신, 인생, 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싫었습니다. 너무 통속적인 전개니까요. ‘걸으면서 인생을 배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창의적이지 않고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징표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말 걷다보니 인생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먼 산     






2. 걷기를 시작하기에 앞서꿀팁 몇 가지     



    프랑스 남부, 스페인과 맞닿은 작은 마을, 생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합니다. 우리 앞에는 피레네 산맥, 소 똥 밭, 메세타 평원, 가파른 돌 길, 비가 자주오는 갈리시아 길, 정상 둘레길 등 다양한 지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한 신발을 신으세요.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는 바닥이면 더 좋습니다. 저는 그냥 신던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대부분 멋진 등산화를 신고 오지만 운동화도 괜찮아요. 굳이 돈 들여 사지 않아도 됩니다. ‘물집과의 전쟁’을 준비해주세요. 물집 패치와 근육 테이핑이 필요합니다. 양말도 넉넉히 큰 사이즈로 준비해주시고, 발가락이 땀에 미끄러지지 않게 발가락 양말을 하나 안에 신어주시면 더 좋습니다. 종아리, 발목 근육을 강하게 잡아주는 테이핑도 붙입니다. 발바닥도 아프니까, 발바닥도 테이핑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의 목표를 나에게 맞게 세우는 것입니다. 순례를 시작하던 첫 날,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주인은 제게,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마라. 너의 몸이 멈추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너의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여이건 경쟁이 아니다.’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경쟁하지 않고, 내 몸의 한계를 과대평가 하지도 않고 과소평가 하지도 않으면서 적정한 수준으로 걸어야 합니다. 당장 내 옆의 순례객이 나를 앞서가면 얼마나 초조하게요……. 하지만 내 페이스를 지켜야 합니다! 오버페이스하면 물집이 잡히고, 물집이 신경 쓰여서 어기적 어기적 걷다보면 무릎이 망가지고, 결국 더 느려집니다. 겁먹어서 너무 느리게 가면, 너무 느립니다. 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세요.   



       




3. 국경을 걸어서 넘다                             



  내일 국경을 걸어서 건넌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간다. 우리나라의 국경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걸어서 이웃 나라로 갈 수 없다. 바다 한 가운데, 총성 소리 들리는 땅 가운데에 국경이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면서도 선언적으로 북한과는 다른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어디까지이고우리와 그들은 어디서부터 나뉘는 것일까. 근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까딸루냐, 홍콩, 대만, 티베트처럼, 다른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묶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같은 민족이 다른 국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현대의 국경은 임의적이고 정치 기술적인 개념이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 경계를 세우는 것은 의사소통 또는 정치의 효율성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보듬어야 할 책임도 주어진다. 북한에서 내려온 우리 할아버지는 북한 사람인가 남한 사람인가, 홍콩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은 홍콩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내일 걷게 될 국경처럼 눈에 보이는 선이든우리나라처럼 바다 한가운데 임의로 그어진 가상의 선이든나는 그 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사람들을 기억해야한다. (2019. 9. 13. 일기 中)



    저의 할아버지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한국 전쟁 당시 남한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평북 정주는 백석 시인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거리라고 하니, 제가 한국에서 걸어 부산에서 출발했다면 할아버지의 고향도 걸어 지나쳤겠지요. 순례 여정 23일 째 정도에는 정주에서 머무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행위는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왜 우리는 걸어서 국경을 못 넘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베를린 곳곳에서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도 평화가 찾아올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독 정치인이 TV에서 말실수한 것이 통일을 촉발했듯이, 우리 한반도에도 시나브로 평화가 찾아오진 않을까, 꿈꿔보았습니다. 한반도 DMZ에도 평화둘레길이 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 곳을 걸으며 제게 찾아오는 생각과 마주하고 싶습니다. 프랑스 어딘가에서 평화와 통일과 경계와 사랑을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DMZ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제 안에 샘솟을지, 저를 어떻게 감화시킬지 궁금해집니다. 장소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상을 주고걷기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우리를 안내하니걷는 자는 매순간 새로 태어납니다.     



...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다음 이야기  <그래서 순례길 걷고 나서 살은 빠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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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헉 나 하몽이 된 것 같아. 엄청 납작해!”
하몽은 스페인식 햄인데요, 아주 납작하게 말린 햄입니다. 남편 뱃살이 빠졌다는 의미일까요?! 걸으면서 나타난 몸과 마음의 변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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