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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킴 Nov 22. 2019

순례길 위 한국인이 기피 대상이라고요? (2) 낙서

어제의 순례자와 내일의 순례자가 만나는 하나의 소통 방법, 낙서

    글 쓰는 오늘, 2019. 11. 21.(목) 베를린.     

    베를린은 며칠째 날씨가 흐립니다. 가끔씩 비도 추적추적 내립니다. 마침 운동 나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비가 살짝 옵니다. 유럽인들은 웬만큼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우산을 쓰지도 않습니다. 저도 유러피언 인척 비에 개의치 않고 집 앞 공원을 뛰고 왔습니다. 베를린은 유럽 다른 도시들 중에서도 그라피티가 많은 편인 듯합니다.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곳에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그라피티를 그리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더라고요. 괜히 베를린이 예술가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게 아닙니다. 마침 오늘 글의 주제랑도 겹쳐, 비를 뚫고 운동하러 나온 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은 순례길 위 한국인 3부작의 두 번째, 낙서 편입니다. 순례길을 걷는 중, 순례길 위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알려진 기사 내용과 실제 순례길은 생각보다 차이가 컸기 때문에, 기사 내용에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순례길을 다녀온 한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되짚어볼까 합니다.


    이 전 글은 아래 링크 참조




    만국 공통 골칫거리, 낙서. 


     일반적으로 낙서에 대한 이미지는 안 좋은 편이지만, 낙서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공공시설물은 아니라도, 학창 시절에 읽던 교과서에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거예요. 저의 교과서 '도덕'은 '똥떡'이 되었고 '국어'는 '굶어'가 되었습니다. 낙서는 무료함을 달래는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행동입니다.


    낙서 중에서도 특히 해외의 관광지에 한국인의 낙서가 자주 논란이 됩니다. 이번에 논란이 되었던 뉴스 기사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적힌 한국인의 낙서를 문제 삼았습니다. 순례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뉴멕시코주 국립공원 사적지인 ‘엘 모로 바위’에 낙서를 한 혐의로 한국인 유학생이 약 3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고, 한 한국인 커플이 일본 후쿠오카 타워에 낙서한 사진이 일본 SNS에 퍼지면서 입국을 금지하라는 여론까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해외 관광지에서 한국인의 낙서가 얼마나 문제였는지, 순례길 오픈 채팅방에 있는 어떤 분은 낙서를 지울 도구를 들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처음 며칠간 낙서를 지우면서 순례길을 걸으시다가 낙서가 한 둘이 아니라 그만두셨다고 하니, 낙서가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낙서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네요. 가까운 일본, 중국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 등 전 세계 어디서나 낙서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해외 관광지에서의 낙서가 문제가 되어, 공익광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지하철이나 담벼락에 그라피티가 안 그려져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흔하게 낙서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낙서가 유별나게 보이는 이유


    한국인의 낙서가 유별나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글로 된 낙서가 유독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글로 쓰인 낙서는 그 출처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도 한 몫합니다. 전 세계에서 한글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니까요(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과 솔로몬제도에 한글을 전파했다고 들었지만 정확하게 정착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서양 국가는 서로 공유하는 알파벳이 많기 때문에, 알파벳으로 써져 있다 하더라도 영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어요. 스페인이나 독일 같은 유럽 비영어권 국가의 알파벳은 영어 알파벳에 ñ, ö 같은 알파벳이 추가되는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또 설령 영어라는 게 확실하다 해도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낙서했을 거라고 단정하기는 힘듭니다. 하물며 우리가 잘 모르는 언어로 된 낙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랍어와 태국어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비판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니 비판도 힘을 잃습니다. 어떤 낙서를 보고 '아니, 아랍어 같이 생긴 꼬불꼬불한 글씨로 누가 낙서를 했네, 근데 저게 아랍어인지 태국어인지 잘 몰라'라고 한다면 어쩐지 비판에 힘이 안 실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도 덜 받겠죠. 반면 한글로 된 낙서는 그 비판의 대상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외국에서도 한국인이 민폐네' 하면서요. 




순례길 위의 낙서


    순례길에는 낙서가 정말 정말 많습니다. 그라피티도 엄청 많고요. 순례길 곳곳이 낙서로 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낙서의 형태도 다양해요. 힘들다는 투정도 있고, 힘내라는 글도 있고, 누군가는 시를 쓰기도 합니다. 물론 욕도 가끔 보입니다. 형태가 다양한 만큼 언어도 다양하겠죠. 역시 낙서는 한국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만국 공통입니다.


     순례길에 왜 낙서가 많은지에 대한 답은, 우리가 수업시간에 특히 낙서를 많이 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낙서가 수업시간의 무료함(?)을 달랠 때 가장 효과적이잖아요. 순례길에서는 하루에 20~30km를 걸어야 하는데, 얼마나 심심할까요. 특히나 혼자 온 순례자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6~7시간씩 걷는 것은 고독과 벌이는 사투이기도 합니다. 가끔씩은 함께 걷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고독한 순례자들이 이따금씩 마음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가 낙서입니다.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줘요 첫날만 힘들다 했자나요' 그리고 '화이팅'


    이 사진은 논란이 되었던 기사의 인용 사진입니다.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줘요 첫날만 힘들다 했자나요' 라는 낙서가 되어 있습니다. 낙서가 되어 있는 저 표지석은 순례자들에게 순례길의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입니다. 짧게는 몇 백 미터 단위로 있는 표지석이라서, 순례길 내내 흔하게 볼 수 있고 또 사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낙서하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 표지석 중에서 가장 유명한 표지석을 꼽자면 단연 100km가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저도 굉장히 기대했는데요, 표지석 하나 있는 게 전부라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이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순례자들 덕분에 알아챘지요. 생각보다 아담한 이 표지석에는 다른 표지석보다 훨씬 많은 낙서가 있습니다. 하다 못해 주변에 쌓여있는 돌멩이에도 낙서가 되어 있을 정도죠. 

자세히 보면 표지석 중간에 Km 100,000이라고 적혀 있다.


    아마 이 표지석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낙서들이 적혀 있을 겁니다. 과거의 순례자들이 남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겠죠. 이제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기쁨과 이때까지 걸었던 길들에 대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거의 지워질 듯한 한글로 '평범함은 위대하다'라는 깨달음의 낙서도 있습니다. 


    사실 100Km라는 숫자에 별 의미부여를 하지 못했던 저도, 저 표지석 앞에서 왜인지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아내는 벌써 갱년기(?)냐면서 웃더라고요. 800km 순례길이 거의 끝나간다고 하니 그간 지나온 길들이 생각나기도 하거니와, 저 낙서를 보니 이 길을 걸었을 다른 순례자들이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묘한 동질감이랄까요.


    순례길의 낙서는 어쩌면 과거의 순례자들과 오늘 그리고 미래의 순례자들이 소통하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낙서들을 어찌할꼬?


    모든 낙서가 터부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도시, 베를린에 있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는 앞 뒷면이 모두 그라피티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여려 명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대로 평화의 이야기를 담아낸 베를린 장벽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한번 더 상기시켜줍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자주 운동하러 가는 공원에는 그라피티 미술관도 있어요. 가끔은 낙서가 평화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합니다. 


    사실 낙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장소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요? 만약 누군가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있는 야고보의 유골(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에서 유래되었습니다)에 낙서를 했다면, 난리가 났겠죠. 아마 대부분 논란이 된 낙서들은 역사적 유물이나 장소에 낙서를 했기 때문일 겁니다. 위에 있는 저 표지석은 상대적으로 흔하고 보존의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낙서에 대한 비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낙서가 마을에 있는 담벼락이나 터널 같은 곳에 있는 것도 같은 이유겠죠. 


    장소의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과연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당장 이 글을 쓰면서도 아내와 논쟁이 일어났어요. 저는 역사적인 유적지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닌 곳, 예를 들면 흔히 있는 짧은 터널이라던지 다리 같은 곳에서 낙서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마저도 공공장소이니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의도나 완성도에 관계없이 낙서는 공공시설을 손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내는 카페 같은 곳에서 낙서를 하라고 만들어 놓은 벽면처럼 소유자의 허락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다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만약 순례길 위의 모든 낙서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하면 조금은 저는 조금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은 지친 순례자들에게 한 문장의 낙서가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 문제는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어디에 낙서를 할 만큼 대담한 성격이 못되어 어디에도 우리의 흔적을 남기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순례길 위의 낙서를 보면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저희는 순례길 위 낙서를 하나의 서브컬처로 받아들였습니다. 때론 걷다가 지칠 때 낙서를 보면서 힘을 얻기도 했고, 그 낙서를 보면서 이 길을 걸었던 이전의 순례자들을 떠올리기도 했으니까요. 이미 많은 곳에 적혀 있는 그 낙서를 다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앞으로 사람들이 할 낙서를 모두 막는 것도 힘들 텐데요. 이 낙서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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