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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Eunhye Jeong Aug 22. 2021

음악의 기원

루소의 『언어의 기원』을 읽으면서

루소의 『언어의 기원』을 빠르게 읽고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로만 알고 있던 그에게서 혜안을 발견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식민주의적 관점을 담은 표현과 일부 견해에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번역서는 꼭 오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확한 뉘앙스까지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기는 한다. 음악에 관한 챕터에서는 음악 전공자로서 볼 때에 다소 어색한 점들이 발견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세계관을 통찰할 수 있는 간결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어의 기원을 파악하려는 루소의 시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은 음악의 기원이었다. 그는 욕구가 아닌 정념이 인간 언어의 발생 동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념 (감정)이 아닌 생각 (이성)을 표현하도록 말이 변화하면서 풍성한 어조와 음량을 통한 표현이 줄고, 자음이 더 증가하고 문법적 조합과 새로운 조음을 통해 복잡성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언어의 역사와 발달을 연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목소리가 단조로워질수록 자음이 더 증가하고, 소멸되는 어조와 균등해지는 음량을 문법적 조합과 새로운 조음으로 대신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의 힘 때문일 뿐이다. 욕구가 점점 더 증가하고, 관심거리가 더 복잡해지며, 깨달음이 더 확장됨에 따라, 언어는 특성이 바뀌게 된다. 그것이 더 정확해지면서 정념은 덜 표현된다. 언어는 감정을 생각으로 바꾼다. 그래서 그것은 더 이상 마음이 아닌 이성에 호소하게 된다. 그로써 감정적 어조는 사라지고 조음이 확대된다. 언어는 더 정확하고 명확해지지만, 더 단조롭고 더 잘 울리지 않게 되어, 더 차가워진다. 이러한 진보는 내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주: 역사는 감정에서 이성으로, 어조에서 조음으로의 이행을 입증한다. 감정의 언어는 이성의 언어 앞에서 사라진다.)


루소는 언어의 감정에서 이성으로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역사 발전 양상이라고 인정하는 듯이 보인다. 이를 ‘진보’라고 표현했음을 통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에 관하여서는 사실상 그 비슷한 경향성을 띈 ‘진보’가 매우 잘못된 것이라 비평을 한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이 되는 정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음악의 정체성을 정량화된 음계와 그의 물리적 조합으로 한계를 지우는 당시 발달하고 유행하며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화성’을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음악의 기원으로부터, 본질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본 것이다.


위의 루소의 논점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본다면, 어조와 음량을 드라마틱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음운의 요소는 모음에 해당한다. ‘저기’라고 말할 때에, ‘저’의 ‘ㅓ’를 길게 늘이면서 뒤에 갈수록 음량이 커진다면 아주 멀리 있는 어떠한 지점을 가리키는 것을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ㅓ’를 짧게 발음할 때는 표현하고자 하는 어떠한 지점과 현 위치에 대한 거리감은 생동감 있게 표현되지 않고, 이곳이 아닐 뿐이지만 가까운 저쪽 어딘가라는 표현이 된다. 또는 ‘저기요’라고 타인을 부를 때 쓰는 말처럼 된다. 루소는 정념과 생각을 대치하여 놓았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어조와 음량을 통해 정념뿐만 아니라 실상, 즉 도량형을 그려 내는 것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기’라는 예시에서도 드러나듯이 아주 멀리 있는 지점을 생생하게 말함으로써 나타내는 것은 그저 이곳이 아닌 저곳이라는 내용이 아니라 그 거리 자체와 사람이 느끼는 거리감 모두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에서 음악의 기원을 찾는 것은 언뜻 음악의 선율적 요소를 강조하여 리듬 중심으로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문화권의 음악을 소외시키는 관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선율, 즉 멜로디는 음의 높낮이와 리듬의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라고 하지만, 리듬보다는 음정의 성격을 강조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게 때문이다. 또한 타악기를 리듬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악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루소 또한 유럽 중심적인 사고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루소가 확장적인 이해를 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자연적인 배음과 인간의 정념에서 음악적 조화로움을 찾았던 점이 타악기의 음악성을 포용할 수 있는 어떤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리듬-소리, 소리-리듬이 마치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것과 같이 함께 맞물려 움직인다는 점이다. 언어도 일반 언어보다는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이지만 엄연히 운율이 있고, 타악기에도 엄연히 고유의 배음과 음가, 높낮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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