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래

민희와 언니의 편지 (2)

by 은은한

언니, 언니 답장을 받고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한편으로는 언니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요. 그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했었나 봐요. 그래도 언니가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언니가 병원을 가보라는 말을 했을 때 처음엔 조금 당황했어요.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가 싶어서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병원은 사실 좀 꺼려지기는 해요. 요즘 정신과 가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내키지 않아요. 약에 의지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일단 운동을 해볼까 해요. 기분이 가라앉을 때 몸을 움직이면 좀 나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게 도움이 될지... 일단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몸이 힘든 것보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능력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참기 힘들어요. 그래서 더 우울한 것 같아요. 남들 다 힘들게 일하고 견디면서 사는데 나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 제가 맡은 프로젝트의 경우도 솔직히 하기 싫고 힘들어요. 그런데 못하겠다는 말을 못 하겠어요. 그러면 제가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요. 제 성격상 그건 참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언니 제가 좀 안정이 되면 만나서 이야기해요. 오랜만에 언니랑 만나서 수다 떨고 싶어요. 그동안의 언니 이야기도 좀 듣고요. 언니 잘 지내요. 조만간 약속 잡아요!


민희야, 오늘은 컨디션이 어땠는지 궁금하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너한테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야. 네 말 대로 괜찮아지면 서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자. 나도 너 보고 싶다.


정신과는 심각할 때만 가는 곳이 아니야. 우리 감기 걸리면 내과 가는 것처럼 생각하면 돼. 병원에 가보면 사람이 많아서 아마 깜짝 놀랄 거야. 나도 처음에는 놀랐었거든. 그만큼 아픈 사람이 많다는 거겠지. 병원에 가보면 좋겠지만 네가 아직은 싫다니까 할 수 없지. 운동도 좋은 방법이긴 해. 일단 네가 생각한 대로 해보고 좋아지지 않으면 그때 병원에 꼭 가자.


이번에 네가 보낸 메일 읽으면서 좀 속상했어. 내가 아는 민희는 누구보다 생활력 있고 똑똑한 사람인데 스스로를 너무 낮게 보는 것 같아. 저번에도 내가 말했듯이 넌 지금 에너지가 다 소진된 상태야. 배터리가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니? 최신 아이폰이라도 배터리가 하나도 없으면 쓰지를 못해. 아이폰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일단 충전부터 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넌 의욕이 넘쳤어. 직장도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공부도 했잖아. 그때 난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난 퇴근하고 나면 다 귀찮아서 그냥 누워만 있는데 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했잖아. 이 힘든 고비를 넘기면 다시 그때처럼 의욕적으로 내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거야. 내 생각에는 네가 쉼 없이 달려오느라 지친 것 같아. 우리는 계속 달릴 수 없거든. 한 번은 쉬어 줘야 해. 지금이 쉬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마. 남은 다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지 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야. 사람마다 다 달라. 그러니 지금은 남을 보지 말고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렴. 민희야, 네가 힘든 이유가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해서라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야. 우리가 누구한테 이기려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지금 제일 힘든 건 그냥 너 자신이 지쳐서 그런 거 아닐까? 우리는 결국 결승점에 도달할 거야. 그리고 반드시 1등 하지 않아도 돼. 결승점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우리 사회가 자꾸 1등 하라고, 성공해야 한다고, 연봉은 얼마 이상 받아야 한다고 외치는데, 난 그 소리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불법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도 잘 사는 인생이야. 나도 처음에는 세상의 소리에 너무 예민했어. 그런데 내 자신을 보니 세상이 말하는 그 성공 기준에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남들은 잘 사는데 난 자꾸 뒤처지는 것만 같아서 점점 사는 게 재미없어지더라. 그러다가 일도 많아지고, 집에 빚문제도 생기면서 내가 폭발해 버린 것 같아. 아프고 나서도 나만의 페이스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빨리 건강해져서 소위 말하는 성공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렇게 조급해할수록 불안이나 신체화 증상이 좋아지지 않더라고. 작은 엄마가 그러더라. 물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힘을 빼야 한다고.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정말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하니까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그 뒤로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게 나답게 사는지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 물론 가끔 세상의 잡음에 흔들리기도 해. 그러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나에게로 집중을 하지.


민희 너도 처음에는 너 자신에게 집중하기 힘들 거야. 그동안 우리가 성공해야 한다는 말에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그래. 그런 세상의 소리를 듣지 말고 네 속에서 외치는 말에 귀를 기울여봐. 너 자신은 지금 너에게 ‘그렇게 살지 마! 그건 너에게 맞는 삶이 아니야!’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있을 거야. 지금 고통스러운 이 시간이 너의 진짜 소리를 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


너무 잔소리를 많이 했나 봐. 더 많은 이야기는 만나서 하도록 해. 아무쪼록 네가 평안하기를 기도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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