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 고장 난 것 같아요

민희와 언니의 편지 (1)

by 은은한

*이 글은 저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불안과 우울을 솔직하게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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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잘 있었어요? 그동안 연락도 잘 못했네요. 예전에는 언니랑 자주 통화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는데 언제부터 인가 서로 소원해진 것 같아요. 연락도 없다가 이렇게 불쑥 메일 보내서 미안해요.


언니, 요즘 제가 고장 난 것 같아요. 가슴이 답답하고, 잠도 안 오고,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와요. 어제는 출근하는데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이런 나를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울컥해서 화장실에 자주 가서 울어요.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맡고 나서부터 이러기 시작했어요. 프로젝트가 내 능력 밖의 일인지 너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게다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이 엄청난 일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너무 벅차요. 상사에게 말을 하고, 동료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소용이 없어요. 다들 들어주기는 하는데 실질적으로 저를 도와주지는 않아요. 뭐 다들 바쁘니까 그런 거겠죠.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이에요. 제 나이가 서른여덟이잖아요. 여기서 그만두면 다른 회사에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두려워요. 언니 알잖아요. 나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만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 해소한다고 중랑천 뚝방길 따라 뛰어 보기도 하고, 코인 노래방 가서 목청껏 노래도 불러봤어요. 그래도 가슴 한가운데 들어앉은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지지 않아요.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다 포기하고 숨고 싶어요. 포기하고 싶은데 마음 한 켠에서는 내가 나약한 인간인 것만 같아서 불편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언니, 날 위해 기도 좀 해줘요.


민희야,

진짜 오랜만이네. 서로 못 본 지 7, 8년 됐나? 서른 초반에 한창 어울려 다니다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서로를 못 챙긴 것 같아. 잊지 않고 이렇게 연락해 줘서 참 고마워. 그런데 네가 참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 내가 보기엔, 민희 너 번아웃이 온 것 같아. 너무 애써서 에너지가 방전 상태인 거야. 좀 쉬면 좋을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우선 난 민희 네가 정신과를 가봤으면 좋겠어.

나도 8년 전에 번아웃이 크게 왔었어. 일도 힘들었고, 집에 일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든. 그때 나도 너처럼 우울하고 불안했어. 맛집을 가도 전혀 즐겁지 않았고, 드라마를 봐도 재미있는지 모르겠더라. 어느 날 왼쪽 아랫배에 기분 나쁜 통증이 시작됐어. 겁이 나서 무슨 병이 생겼나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어. 사실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당시에는 몰랐지만 통증이 신체화 증상이더라고. 검색을 했더니 자궁암이니 대장암이나 무서운 병 이야기만 나오더라. 그때부터 갑자기 불안했어. 시간이 갈수록 불안의 강도가 점점 세지더니 어느 날 회의하는데 심장이 마구 뛰고 땀이 막 났어. 그날 밤에는 잠도 안 오고 가슴이 뜨겁고 숨도 잘 못 쉬겠더라고. 작은 엄마가 상담을 하시거든? 그래서 작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내 상태를 말했더니 당장 병원에 가자는 거야. 그래서 다음날 작은 엄마와 정신과에 갔어.


병원에 들어서니 은은한 조명과 따뜻한 우드톤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어. 병원의 향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병원은 편안한 분위기였지만 그때 난 정말 무서웠어.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었거든.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울면서 쏟아냈어. 한참을 말하고 나니, 선생님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어.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괜찮아질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더 펑펑 울었지. 그렇게 난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를 시작했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은 괜찮아. 이제는 의사 선생님이 약도 끊어보자고 하시더라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병원에 가길 잘한 거 같아. 민희 네 상태가 치료를 받아야 될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일단 병원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지금 네가 힘든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기계도 무리해서 사용하면 고장 나. 사람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배터리를 다 써서 다시 충전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 절대 네가 나약해서 그런 거 아니야.


요즘 정신과 초진 예약 잡기 힘들다고 하더라. 한 달은 기본이래. 그러니 일단 병원 예약부터 해. 그리고 너 자신을 잘 챙겨. 세끼 잘 챙겨 먹고, 물도 자주 마시렴. 너 자신을 자주 위로해 줘. 네가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내길 기도할게. 언제든지 힘들면 내게 기대도 돼.


다음에 또 연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