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겁내지 마

민희와 언니의 편지 (3)

by 은은한

언니,


마지막 메일을 보낸 지 꽤 시간이 흘렀네요. 제 상태가 좋아지면 언니를 만나서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잘 지내지 못하고 있어요.


지난번에 병원에 가는 대신 운동을 해보겠다고 했잖아요. 사실 한 번도 못했어요.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아요. 집과 회사 외에는 다른 일은 엄두도 안 나요.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 마음은 늪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어요. 푹 자기만 해도 다음 날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데… 원래는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뒤척이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어떨 때는 아예 한숨도 못 자요. 어제도 그랬어요.


어제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캐모마일 차를 마시면 도움이 될까 싶어 우려서 마셔봤어요. 그런데 아무런 효과도 없더라고요. 결국 포기하고 유튜브를 보다가 책도 뒤적였는데, 커튼 사이로 날이 밝아지는 게 보였어요. 그 순간 너무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어요.


요즘 제 자신이 한없이 바보 같아요.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은커녕 그저 울고만 있어요. 병원에 갈 용기도 없어요. 혹시 심각한 병이면 어떡하죠? 낫지도 않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면… 정말 아무 희망도 없는 것 같아요. 정신과 약이 독하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말도 들어서 더 망설여지고요.


언니,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민희야,


그동안 연락이 없어서 많이 걱정했어. 먼저 연락하고 싶었지만, 혹시 부담이 될까 봐 망설였어. 그래도 그냥 할 걸 그랬다.


민희야,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도 처음엔 병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 너처럼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거든. 마치 가면 안 되는 곳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냥 일반 병원이더라.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필요한 약을 처방받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그러니까 너무 겁내지 마.


예전에 작은엄마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 준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너와 함께 가줄게.


네가 걱정하는 '심각한 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우울증이나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그건 너의 정체성이 아니야. 지금 잠깐 삐걱대고 있는 것뿐이야. 허리 디스크 환자는 그냥 허리가 아플 뿐, 병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잖아. 정신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나도 정신과 약이 불편했어. 마약처럼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끊지 못할 것 같았어. 약을 먹으면 내가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두렵기도 했고.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나. 선생님은 "이 약은 제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처방할 만큼 안전한 약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드세요"라고 하셨거든. 그리고 정말 그 말이 맞았어.


요즘 정신과 약은 예전과 달라. 부작용도 적고, 종류도 다양해서 너에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어. 약은 네가 일상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야. 만약 내가 약을 먹지 않았다면, 여전히 불안에 떨며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


약이 증상을 완화해 주면 몸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오히려 회복에 도움이 돼. 감기약을 먹으면 증상이 덜해서 우리가 일상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잖아? 정신과 약도 마찬가지야. 꼭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야.


나는 이미 이 길을 걸어봤기에, 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 두렵고 불안하겠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보자. 저번에 말했듯이 요즘 정신과 초진 예약 잡기가 어려우니, 일단 병원부터 예약해 두자.


네가 원한다면, 내가 함께 가줄게.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말해줘.


그럼 이만 줄일게. 연락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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