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비아돌로로사, 마가의 다락방, 통곡의 벽!
예루살렘 'Holy Land'의 둘째날이 밝았다.
나는 예전부터 '효녀'라는 말이 싫었다. 엄마는 내가 잘하고 기분좋을 땐 '효녀'라고 하다가, 조금만 자기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하거나 심사가 뒤틀리면 쉽사리 '불효녀'라며 '아니불 不'자를 그렇게도 쉽게 붙여 버리곤했다. 나는 언제나 그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과 기대감의 무게에서 언제나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엄마랑 있다가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이 나면 짜증내도 상관없는... 조선유교가 부여한 타이틀에서 벗어난 그냥 '한명의 사람'이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미국간 언니를 대신한 '실질적 장녀'라는 내 처지의 '엄마의 딸'이란 타이틀은 어깨 위에 얻힌 무거운-벗어던지고 싶은 짐 같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이스라엘 여행은 '효녀' 타이틀을 넘어 '360도 가이드'가 되어야 했다.
당뇨에 고혈압에 거동이 불편한 엄마가 여행 후 병세가 도지면 안됬기에 아침 일어나자마자, 조식당으로 가 트렁크 고이고이 모셔온 현미밥을 데우고 반찬으로는 메추리알과 김치, 김을 준비했다.
예루살렘 예후다 마켓 근처에 자리잡은 '아브라함 호스텔 예루살렘(Abraham Hostel Jerusalem)'은 조식이 참으로 알찼다. 중동의 올리브 강국다운 올리브, 콘샐러드, 피타브래드, 치즈와 찐 계란... 이 모든 것이 뷔페!
엄마 반찬과 이 조식은 참으로 당뇨인 메뉴로 잘 어우러졌다. 덕분에 고민 하나 덜었다.
유월절과 부활절이 겹치는 주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탓일까? 조식당에는 전 세계에서 성지순례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들과 어색한 동포애(?)의 눈인사를 하면서 이스라엘에서의 첫번째 아침을 시작한다.
조식 후 졸지에 가이드가 된 나는 오늘의 일정을 기획한다. 첫날이니 가볍게 워밍업!
성지순례에 관심없는 어머니를 위한 스토리텔링으로 각 구역에 대한 내용을 어젯밤새 읽으며 공부했다. 나도 처음가보는 곳이기에 구글맵으로 장소 저장 미리 해놓은 것은 필수! 중간에 휴대폰 밧데리가 나면 큰일이므로 휴대폰 밧데리 하나도 따로 챙겼다. 엄마가 목마를 것을 대비해 물병과 간식까지 챙기니 내 짐이 벌써 한짐이다.
그래도 나가자!
오늘의 첫 일정은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
이곳으로 가기 위해 구글맵을 켰더니 버스를 타란다. 호스텔 앞 정류장에 있는 자동발매기에서 똑똑하게 '교통카드 라브라브 Rav-Rav pass를 구매! 9분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타라는 구글맵의 디렉션을 따라 갔는데, 아뿔사 언덕을 낀 9분이어서 울 엄마 뒤뚱뒤뚱 진땀 뺐다. 버스타고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을 돌아돌아 하차하는 그 순간까지외국인 긴장! 내려서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 자연스레 합류 통곡의 벽에 도착했다.
*통곡의 벽 Western wall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태복음 24:1-2)
신앙이 깊은 유대인들이 오늘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의 한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코, '통곡의 벽'이 아닐까? 서쪽벽 Western wall 이라는 이름은 옛 예루살렘 성전 서쪽의 벽이라는 유래로, 지금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 다 무너지고 이 벽만이 과거 성전의 모습을 쓸쓸히 보여준다.
총 길이 약 57미터, 높이 18미의 통곡의 벽은 남녀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체인 성전을 파괴하기 위해 로마 티투스 장군은 로마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서쪽의 성벽 일부만을 남기고 성전을 파괴했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쫒겨난 유대인들은 비잔틴시대가 되어서야 일년에 단 하루, 성전이 파괴된 티샤베아브에만 성전 서쪽벽에 접근할수 있었다고. 유대인들은 이 벽을 만지며 폐허된 성전을 슬퍼하고, 하나님의 집이 하나되지 못하고 자신들이 받게 된 고난에 회개하는 통곡의 기도를 눈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벽의 이름이 '통곡의 벽'이 되었단다.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마태복음 17장 27-31)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결정한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안토니아 오새)'부터 골고다 언덕위에 세워진 '성묘교회'까지의 길을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라고 한다. Via는 길, Dolorosa는 슬픔이란 뜻으로 '슬픔의 길'이란 뜻이다. 예수님이 자신이 직접 처형당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신 그 길을 다시 걷자니 비장함이 스며든다. 어젯밤 책으로 볼때는 어렵지 않았는데, 실제 구 시가지 골목골목 이정표도 제대로 없는 구부러진 길을 엄마 넘어질까 돌아보며 걷자니, 총 14지점까지 있는 이정표중 1-4번 지점은 훌쩍 뛰어넘고 바로 5번 지점에 도착해 버렸다. (아쉽다... 도저히 잃어버린 1-4번을 찾으러갈 체력이 우리 둘에겐 없다. )
#5.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진 장소 Simon of Cyrene helps carry the Cross
복잡한 아랍의 재래시장에 위치해 있어 옷가게 액세서리 들이 즐비한 곳에 있다.
엄마는 아직까지 씩씩하게 걸어가신다. (저 배낭안에 무거운 것은 이미 다 내 배낭으로 옮겨져있다.)
길가 고양이는 오전의 나른함을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에 누워 평화로움을 만끽한다.
그러나 나는 슬프다.... 아, 이 길을 걸어가셨구나.
이 비좁고 정신없는 길을....
#7. 두번째 쓰러지신 장소 Jejus falls for second time.
어느새 6번째 지점도 또 놓쳤나 보다. 가이드없는 패키지 투어로 오면 이렇다. 놓치는 게 많다.
나는 이리 한장소 한장소 놓치는게 아쉬운데, 그러나 울 엄마는 관심이 없다.
7번째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미처 감당치 못하고 다시 쓰러지신 곳이다.
사람들이 이곳 문을 열고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가보니,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작은 성당이다.
내부에는 예수님께서 쓰러지신 모습의 조각도 보인다.
말로 할수 없는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기도를 했다.
*성묘교회 at 골고다 언덕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그러다보니 골고다 언덕위에 세워진 성묘교회에 도착했다. 2천년 전에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채석장가, 예루살렘 성밖의 언덕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세운 교회이며, 이안에 10번째에서 14번째 지점이 있다고 했다. 당시 이스라엔에 성지순례를 왔던 헬레나 황후는 골고다 언덕에서 3개의 나무 십자가를 발견하고 아들에게 청원해 성묘교회를 세웠다 한다. 이제 나머지 지점들은 일일히 찾아보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저 그 길을 걸으며 예수님이 겪으셨을 마음을 헤아리는게 더 중요했다. 아울러 모녀투어의 유일한 고객인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체크하는 것도 말이다.
교회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것은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넓은 바위 앞에 무릎꿇고 앉아 성유를 바르며 기도하고 있었다. 이곳은 12지점,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장소다. 어디서 이곳 성묘교회까지 왔을지 모를 이들이, 두손을 뻗어 절규하듯 간절히 기도한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나에게도 전해져 마음이 아릿해져 왔다.
교회 안 곳곳에 명소들이 있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은 예수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신 아리마대 요셉의 돌무덤이 있던 장소란다. 도저히 엄마를 모시고 몇시간 줄 서 있을 자신이 없어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모든 것이 웅장하고, 성스럽고, 감동스런 장소다.
성령 가득 임재함을 느꼈는지, 불자 엄마는 쉬고 싶다며 서둘러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따라나갔더니 교회 담벼락에 앉아 계신다. 이에 잠시 쉬며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았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둘다 미소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중에, 호텔에서 매번 아침에 쓰던 일기장을 훔쳐봐야겠다.
성묘교회를 나왔더니 점심이다. 엄마는 중간중간에 쉬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구글맵으로 찜해둔 팔라펠 식당
Tala 로 갔다.
엄마에게 감사했다. 정말 아이처럼 잘 걸으신다. 이스라엘 떠나기 전 한의원을 집중적으로 다니셨단다. 본인도 자기 걸음에 감사하다며, 한의사에게 꼭 기념품을 사서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고.
*마가의 다락방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 1: 13-14)
정신없이 예루살렘 구시가를 걷다보니 '마가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오순절 함께 모여 기도할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마가의 다락방'이 있었다. 이끌리듯 들어간 이곳은 한국식 정서의 좁디 좁은 "다락방" 개념이 아닌 석조건물이었다. 족히 100명은 있어도 될 듯한 곳이다. 아래층은 다윗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져 오스만 제국을 거쳐 현재 이스라엘 정부가 관리 중이라고. 이곳에서 복음이 시작되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뻗어나갔다고 하니 감개무량했다.
나가자고 채근하는 엄마의 말을 못들은척, 나는 한동안 이곳에 멍하니 머물러 그 시절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기도하던 제자들이 떠올랐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이후 제자들은 각 지방으로 뻗어나가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천년전 제자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이 들리는 듯, 성령의 감동이 가슴을 채워왔다.
엄마의 모습을 보니, 시차부적응과 지친모습에 오늘 투어는 급히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서울서 가져온 2개의 미니 찜질매트로 엄마 다리와 허리를 지져드리고, 나는 2층 식당으로 가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도 정신없이 잘 갔다.
어무니도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