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린 별똥별의 닥치고 LIFE 10
지옥 같은 버클리를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공부에는 정말 학을 띠었다. 신문 방송학과 Media Studies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 언론계 쪽이나 법조계 쪽으로 방향을 틀 때, 나는 완전 반대로 기선을 틀었다. 더 이상 공부는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미국인 학교 친구 중 한명의 부모님이 여신 자선 기금 모금 행사에 참여를 하게되었다. 나의 눈은 그곳에서 행사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는 Party planner에게 완전 꽂혔다. 검은 정장을 입고 그 행사를 진행하던 이벤트 플래너가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뭔가 항상 새로운 것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방향을 튼 것이 바로 그런 스페셜 이벤트를 공부할 수 있는 베가스의 호텔 학교 UNLV였다.
이미 교양 과목이나 기본 대학 과목은 다 이수를 한 상태였기에, 이곳에서는 전공과목만 공부를 하면 되어 일단 학교를 다녀야 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실습을 위주로 하는 학교 수업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학교 졸업 후 인턴쉽을 시작했하면서, 또 다른 수많은 장벽들과 마주했다. 이번에 부딪힌 가장 큰 문제들은 이벤트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나는 실재 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책상 앞에서만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날려버린 나에게, 테이블 위의 포크 하나가 제대로 놓였는지부터, 전체 디자인은 잘 되었는지, 엔터테이너들은 잘 도착했는지, 파티가 끝나고 모든 참석자가 만족하며 행사장을 떠나는지까지 꼼꼼히 점검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섭렵 해야 했다. 게다가 영어 자체도 내가 이전에 사용해 오지 않은 분야이다 보니, 다시 유치원 아이의 수준으로 가서 사용하는 단어와 말을 배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꾸준히 해 냄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진리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이다.
손에 수많은 가시들을 찔려가며 꽃을 다듬고, 남의 파티에 가서 음식을 날라주고, 그들이 먹은 음식들을 치워주고, 행사 후 더러워진 테이블보를 수거하고, 다 끝난 파티장이 청소를 마치고 마지막 불이 꺼지는 새벽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일들을 수도 없이 해냈다. 이런 온갖 막일을 하려고 라스베이거스까지 갔냐는 수많은 질문과 의문 속에서 보낸 처음 3년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 보다 더 힘들었던 부분은, 나의 상황을 잘 모르고 뱉어내는 주변의 시선과 그들의 영혼 없는 의견들을 샤워처럼 받아내야 하는 순간들이다.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생은 내가 받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 할 수 있을 만큼 관대하지 않았다.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았던 밑 바닥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한건, 행사 곳곳에 부족한 점들이, 그리고 채워져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그전에는 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행사장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버거웠는데, 그 동안 잘 참으며 채워 왔던 인고의 시간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요술 컨텍트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불공평 할지는 모르지만, 나의 실력은 정직하다.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내가 한만큼 반드시 댓가가 나온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딱갈이를 열심히 할거다. 그 말은 익숙한 자리에 있지 않고 계속 뭔가를 저지르겠다는 나와의 다짐이다. 100% 확신이 없을지라도, 주변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고, 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있다면 일단 그 안으로 풍덩 빠져보련다. 유리 벽 안에서 바라만 보는 세상 보다는, 비바람 맞으며 직접 경험을 할 수록 확신이 더 생기는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 주사위를 던진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불편함을 맞이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