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LA에 있는 한 이벤트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자신의 괴팍한 성질에 못 이겨 모든 직원한테 소리를 지르고 언어폭력을 휘 두르는 사장을 만났다. 그 작은 몸에서 어찌 그리도 괴물 같은 모습이 나오는지, 그녀보다 두 배나 큰 남자 직원들도 진저리를 칠 정도로 무서워했다. 일반 사무실처럼 9시 출근, 하지만 마치는 시간은 이벤트가 끝난 후에야 마무리를 해야 하는 일이라 어떨 때는 새벽 2시 3시가 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해도 그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고, 특히나 한국 사람에게는 더 챙기는 척하면서 요구하는 사항은 끝이 없었다. 나의 긍정의 모습을 인정해 주기보다는, 내가 부족한 점을 후벼 파 상처를 만들고 그 자리가 아물기 전에 계속 생채기를 낸 사람이었다. 그녀가 필요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따뜻한 말을 해 주다가도, 수가 틀리면 어느 한순간 괴물로 변했다.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기 힘든 멕시코 사람들과, 그래도 정 때문에 붙어 있는 의리 있는 한국 사람들은 폭풍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꿋꿋이 참고 있었지만, 세일즈를 하는 미국 직원들은 치를 떨며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정말 현대판 노예처럼 살았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건강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어떻게 8개월을 버텼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때는 나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저 모든 것이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나를 원망했다.
아주 오랫동안 알아 온 친구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사는 법을 익혀야 했기에, 그야말로 사회 바닥부터 시작해서 온갖 힘든 일을 헤쳐 나가며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친구였다. 사랑이 많고, 정이 많고, 웃음이 많고, 의리가 넘치고, 게다가 관대하기까지 한 그녀였다. 내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옆에 있어 준 친구이다. 그녀가 사는 방법은 벼랑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그녀가 당해 왔던 삶이었고, 그 찢어진 마음들과 고통들은 그녀를 더 강하고 독하게 만들었다. 살아나기 위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그녀였다.
그녀는 항상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내가 보지 못한다고. 더 강하게, 더 많이 요구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물러 터져서 다른 사람들한테 늘 이용당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색깔에 하나씩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바른 매니큐어 색깔부터, 추억이 담겨있는 내 옷도, 심지어는 내가 기분 좋아서 흥얼거리는 노래까지 트집을 잡았다. 유니스 캐릭터를 싹둑싹둑 잘라내고 심지어 감성을 느끼는 더듬이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제2의 그녀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어느 날 너무나 하찮은 일로 나에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난 그녀를 떠났다. 그녀는 내게 긴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이 모든 것을 나의 성공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내가 더 강해지고, 더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나 자신의 존재감이 없었던 20대였다면, 내 잘못이라 자책하며 그녀에게 나를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얘기를 했겠지만, 그런 일들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나보다 수 백배 많은 부를 소유한 그녀이지만, 결코 부럽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녀 만큼의 부를 보장받는다 해도 난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유니스 배”라는 사람이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지만, 타인한테 피해 주지 않는 한에서 나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 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이 둘 모두 나를 위해서 일부러 강한 방법을 택했다고 얘기했다. 본인이 당해서 그 방법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알면서도, “너를 위해서 이렇게 심하게 구는 거야”라는 포장 아래, 언어폭력을 아무 죄책감 없이 저질렀다.
나를 사랑하고 지키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다. 내가 나의 소중함을 느끼지 않고는 타인도 그 귀함을 절대 알 수 없다. 오늘부터 나를 더 안아주고,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