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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Aug 10. 2019

고요하게 담담하게

문태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무심귀대도’라고 했으니 마음을 비우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서 담담히 일을 하다 보면 큰 변화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면 물항아리가 가득 차듯이. 물이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배를 띄우듯이.

-문태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중  


여전히 더운 토요일 낮. 2019년 새해 첫날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성경을 오늘 아가서까지 끝냈다. 하지만 한참 이리저리 다니느라 빠진 분량들이 있어 에어컨 아래에서 열심히 읽어나가 이제 시편 일주일치만 남았다.
아름다운 시편을 읽다가 분위기도 바꿀 겸, 다른 책을 펼쳤다. 요즘 여행지마다 가지고 갔지만 결국 노느라 몇 페이지 읽다 그냥 들고 왔었던 문태준 작가의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를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산문집. 처음엔 호흡이 짧아 자꾸 뚝뚝 끊기는 게 아닌가 싶더니, 조용히 읽으며 마음이 가는 문장들을 색연필로 칠하다 보니 온통 노란 색연필 표시로 가득하다.
글을 읽다 보니 성경의 시편과 잠언을 읽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고요한 구도자가 스승의 말씀을 인용하며 성경을 쓴 듯,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말을 통해 산다는 일에 대해, 일상을 좀 더 잘 살아가는 일에 대해 담백하게 말을 하고 있다.


좋은 지인에게 조금 얻어온 귀한 차를 잘 우려내어 한잔 마시는 기분이랄까? 가만히 맑은 문장들과 함께 하다 보니 더위도 그리 느껴지질 않아 에어컨을 끄고 녹차 한잔을 마신다. 쌓인 근심들도 이처럼 고요하고 담담하게 잘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듯 눈이 오면 눈 쌓인 나무가 되듯 잘 받아들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길 바라는 오후가 고요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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