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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n 24. 2017

서른아홉 노처녀의 생애 첫 소개팅 1

노처녀 성장소설

#1. 변화가 필요해


날은 뜨거웠고 내 간도, 내 뇌도 적지 않게 과열되어 있었다. 3일간의 축제에 참가한 주말 동안 술을 마셨고 돌아와서도 ‘생일이다, 종강이다’라는 핑계로 이틀을 더 마셨다. 화천 읍내의 촌스러운 조명의 호프집 ‘만남의 광장’에서 맞이한 30대 후반의 생일. 정확히 말하면 30대의 마지막 생일. 축제의 뒤풀이이긴 했지만, 매년 집에서 잠수를 탔던 생일처럼 혼자가 아니라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비록 생일 케잌 하나 없는 생일이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의 소소한 친절에, 만나본 적 없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에, 이제껏 먹어본 중 제일 커다란 골뱅이가 들어있던 골뱅이무침에 감사했다.


 생일이라는 이유로 과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다는 이유로 동기들에게 와인을 쐈던 밤. 힘들었던 3개월간의 학생 놀이와 5일간의 술꾼 놀이를 잠시 쉬어야겠다 다짐했었던 월요일, 아니 화요일 새벽이 지났다.


전날 과동기에게 받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조각 케잌으로 해장을 하는 화요일 아침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좋아하는 선생님과의 약속이 있는 날. 다음 주쯤 전화하신다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빨리 서울에 올라오실 줄이야. 

그동안 두 번이나 내 스케줄상 선생님을 그냥 보내 드린 게 마음에 걸려 이번엔 무조건 시간에 맞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무겁게 만드는 건 6일 연속이 될 피곤한 술자리도 아니었고, 계획을 변경하고 중간에 나가야 하는 스케줄도 아니었다. 선생님과의 만남 속엔 내 인생 최초의 정식적인 소개팅이 숨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그 흔한 소개팅, 미팅은 물론 선 한번 보지 않았던 고집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의 인연을 누군가의 자연스럽지 못한 각본 속에서, 그것도 그리 잘 연출될지 의문인 어색한 만남 속에서 찾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어차피 별 가능성이 없는 사람과의 실패한 만남을 내 삶의 기록에 넣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선 시장에서 몇 백씩 하는 등록비를 내고 만남을 사고파는 요즘. 운명적인 거창한 만남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나의 존재가치가 누군가로부터 한우 등급처럼 매겨지는 상황만은 스스로 막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난 그들이 평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하지만 서른아홉 생일이 이틀 지난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 내 인생에 너무 진지하게 정색을 하며 살아왔던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조금은 삶에 웃음을 흘려준들 그리 헤프게 보이는 건 아니잖아. 이 나이에 웃음 정도는 괜찮은 거잖아.’


“언닌 좀 그래도 돼요. 언닌 그럴 필요가 엄청 있어요.” 정신적으로 좀 헤프다고 나에게 핀잔을 받곤 하는 좋아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런데 첫 번째 변화가 소개팅이라니.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긴 하지만 나에겐 꽤나 대단한 의미인 것이다. 혹여, ‘그동안 연애 한번 못 해본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일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난 이성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본 일이 없었다. 늘 누군가 먼저 다가오면 나만의 정확한 필터링을 거쳐 만남을 내려줬을 뿐. 살면서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첫 발걸음을 떼는 일이라고 본다면 내 마음의 비장함과 조금의 두려움을 약간이 나마 공감할 수 있을까? 


#2. 그리하여 우린 만난다.


처음은 늘 쑥스럽고 어색한 일. 누가 봐도 꽃단장 소개팅녀라고 보이는 건 첫 소개팅보다도 더욱 오그라드는 일. 최소한의 매너와 그리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의 중간지점인 편안해 보이는 검은색 면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운동 삼아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평소엔 속력이 잘 나지 않는 굽 있는 신발을 잘 신지 않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굽 있는 샌들을 신음으로 나만의 예의를 갖춰줬다. 그래도 나의 큰 키에 혹여 주눅 들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굽은 적당히 5cm 정도로 선택해주는 센스를 더해서.


자 그럼, 이쯤에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소개팅 남의 신상. 일단 이야기를 들은 주변의 이들이 선뜻 나를 부추기지 못했고, 심지어는 “네가 뭐가 부족해서, 너 미쳤니?”라는 말까지 했었던 그의 나이. 마흔아홉! 그래, 마흔아홉, 낼모레 쉰인 남자이다. 물론 재취 자리는 아니니 걱정은 마시고. 그리고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꽤나 비싼 값에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 아무리 몇 천 이래 봤자 일 년에 한 개도 안 팔리면 백수 아닌가?


아… 갈수록 태산이지 싶었다. 반은 황실장으로 반은 유니스로 살고 있는 반쪽자리 아티스트의 삶을 사는 불안한 나의 삶도 힘든데 그림을 그리는 나이 많은 화가라니. 왠지 그 나이 먹도록 결혼을 못한 게 조금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고 정상은 아닐듯한 그의 성격이 조금은 짐작도 되었다. 하지만 나의 변화를 위해, 나의 처음을 깨뜨리기 위해 엔딩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한번 만나보는 건데, 만나서 결혼할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 속엔 이미 나만의 엔딩이 정해져 있긴 했었지만.


<39살의 음악 하는 여자는 49살의 그림 그리는 남자와 그녀 인생의 첫 소개팅을 한다.>

라는 한 문장 요약이 조금은 꿀꿀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처음은 늘 그런 거니깐 넘어가기로 한다. 또한 이 만남은 유명무실한 음성 조직 유결추(유니스 결혼 추진 위원회) 회장님이신 사랑하는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건네주신 따뜻한 마음이기도 했으니깐 일단 받기로 한다.

선생님은 마음이 불안하셨던지 서울에 도착해서 몇 번이나 전화를 하셨다. 물론 일하는 중이었던 나 때문에 우리의 통화는 몇 번 엇갈리기도 했다. 

 서울신문사 로비에서의 첫 만남. 차는 어찌나 막히던지. 약속보다 조금 늦은 예의 없음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 구두를 신고 공사 중인 지하도를 열심히 달렸다. 만남에 10분쯤 늦는 뻔한 수작의 여자는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찌어찌 난 25분 정도를 늦게 되었다. ‘뭐 10분보단 좀 더 드라마틱하네.’ 

도착해 그림쟁이 남자와 잠깐의 눈인사를 나누고는 오는 길의 꽤나 길던 도보길이와 구두를 신고도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었던 나의 능력에 대해 선생님께 잠시 조잘거린 후 지하주차장으로 함께 내려갔다. 뜨거운 날씨에 열심히 뛰어왔던 차에 엘리베이터까지 더워 얼굴과 목 뒤 쪽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 땀나면 화장 얼룩지는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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