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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n 24. 2017

서른아홉 노처녀의 생애 첫 소개팅 2

노처녀 성장 소설

#3. 그래, 시작은 나쁘지 않았어. 


아직 새 차 냄새가 빠지지 않은 쾌적한 그 남자의 차를 타고 우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멋진 k갤러리로 갔다. 가는 내내 선생님은 넓은 그의 차를 보며 감탄을 했다. 내가 광고 영상에 두 번이나 고급스러움과 간지를 주제로 음악을 만들었던 그 차다. 선생님은 차가 넓어 수영을 해도 되겠다는 과장법까지 사용하시며 칭찬과 감탄을 하셨다. 물론 그 감탄의 8할은 이 만남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확신을 나에게 심어주기 위함이리라. 


K갤러리엔 선생님의 또 다른 제자이며 나이 많은 화가의 후배- 후배라 해도 역시나 나이가 많은- 가 총괄로 일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갤러리에서 평소 내가 관람하는 8배속 정도의 시간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갤러리 총괄인 K의 권한으로 부자 컬렉터들에게만 오픈된 프라이빗 룸들과 소장된 귀한 그림들을 함께 구경했다. 이 소개팅의 순서 중 제일 빛나던 시간이었고 꽤나 마음에 들던 부분이었다. 그래 뻔하지 않은 코스, 나름 여러 명이 함께하니 딱딱할 수도 있었던 분위기에 조금 물이 타져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졌다. 


우리는 갤러리 이층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서 술을 마셨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오후 5시. 처음 만난 소개팅 남녀가 처음으로 마시는 음료로는 적당하지 않은 낮술. 하지만 탁 트인 하늘과 아름다운 모습의 산 능선을 바라보며 테라스에서 즐기는 것이라면, 그것이 매력적인 라인의 잔에 담긴 에딩거 생이라면, 용서할 수 있었다. 비록 금주를 다짐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선생님과, k갤러리에서 일하는 선생님의 유부남 제자 k, 입으로 발화되진 않았지만 속으론 모두 알고 있는 나의 소개팅남 화가 아저씨 H, 그리고 음악 하는 노처녀 나. 이렇게 넷은 많은 처음들이 끼어있는 그 자리가 무색하게 많은 맥주를 마셨다. 6시간을 내리. 저녁 도제대로 먹지 않은 채. 넷이 마신 맥주 값이 40만 원은 족히 넘을 정도로.


그 자리엔 수많은 맥주뿐만이 아니라 선생님의 아픈 어머니 이야기로 인한 눈물이 있었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수많은 농담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그 농담이라는 고약한 녀석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강력한 생명력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농담의 대부분은 갤러리에서 일하는 유부남 아저씨로부터 나온 나의 외모에 관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4. 공격 vs 방어


 난 날 때부터 약간의 교만과 누구에게든 기죽지 않음이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나온 사람이다. 사람들이 흔히 미인이라고 말하는 범주에선 조금 벗어난 스타일이지만 내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부모님이 주신 몸과 얼굴에 당당했으며 작은 눈에도 불구하고 혹여 누가 공짜 성형으로 초미녀를 만들어준다는 사탕발림을 할지라도 절대 내 얼굴에, 내 몸에 손을 댈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처음 본 갤러리 권력자 유부남 아저씨는 난생처음 듣는 ‘못생겼다’는말을 몇 시간이고 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계속 반복되면 주술적 힘이 생겨난다. 더 강력한 농담으로 재치 있게 받아치던 나도 몇 시간 동안 끝날 줄 모르는 이 말의 프레임에 점점 갇혀가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다. 5일 내내 먹었던 술과 땀의 결실로 화장은 얼룩얼룩 사정없이 들떠있었고 중간중간 분위기 파악 못하고 태풍의 전조처럼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에 머리는 너무도 자유로운 영혼의 그것 같았다. 


‘아, 클렌징과 며칠간의 잠만이 들뜬 이 얼굴을 구원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항상 미를 추구하는 그들의 전공과 직업을 생각하니 ‘못생겨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거울 속엔 용감하고 당당한 황실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깔려가는 어두움은 잃어가는 나의 자신감에 조금은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궁금하다고 해서 아이패드로 살짝 들려주었던 나의 음악은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해주었다. 


“이렇게 보니 우리 유니스는 얼굴 옆 라인이 예쁘구나.” 

담배를 태우시던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아니, 선생님, 힘들게 겨우 찾아낸 것이 옆 라인이시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으쓱해질 잠깐의 순간도 주지 않는 갤러리 K 아저씨가 또 들이댄다. 


“선생님, 처음 본 사람, 초면에 때려도 돼요?, 일단 그쪽은 당분간은 밤길 조심하세요. 언제 어디서 짱돌이 날아올지 모르니깐.”이라는 말로 나름의 방어를 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방어는 사람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선생님을 춘천 가는 택시로 보내드리고 다시 들어갔던 실내포장마차. 선생님이 가니 갤러리 K아저씨의 농담이 더욱 거침없어졌다. 


“못생겼지만 이제 형이 책임져줘야 하는 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마음으로 이제 누린 만큼 이런 사람들도 보듬어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계속되는 장난에 말이 별로 없던 나이 든 화가아저씨는 후배에게 진담을 가득 섞은 말로 약간의 훈계를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뵙는 자리에서 농담이 너무 수위를 넘는다고. 정말 실례라고. 

그 정색한 말을 듣는 순간, 계속 웃음만을 불러오던 농담들이 갑자기 정말 예의 없는 무례한 말들로 변신을 해버렸다. 화가 H아저씨의 그 한마디로 난 이제부터 계속 웃을 수만은 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확~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마치 꾹 참고 싸우다 엄마를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그 마음처럼 마음 놓고 기분 나쁠 준비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진짜 장난 그만해야겠어요. 이제 더하면 기분이 정말 상할 것 같아요. 너무 길었어. 좀 더 하면 진짜 화낼지도 모르니이제 그만~”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어지간하면 토라지고 울고 그래야 그만하는데, 이건 너무 잘 받아치니나도 계속 못 멈추겠고…….”


‘이건 뭔 초딩 여자 아이들 고무줄 끊는 남자 같은 소리인지.’


 여튼 이제 그만하자고 생각하는 도중 갤러리K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웬 전화?’ 

뭔가 높은 피치의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리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상큼 발랄 어디서든 못생겼단 이야기는 절대 들을 수 없을 듯한 아니, 어디서나 늘 예쁘다는 소리만 들었었을 듯한 20대 후반의 여자, 나와는 띠동갑 정도인 여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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