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성장 소설, 유니스 다이어리
친구와 강남역에서 각 1병 와인을 마시고 막차를 탈 생각으로 나왔다만, 개찰구 카드오류로 5분 동안 입장이 불가했다. 이미 태그 된 카드라고 하면서도 막상 입장이 불가되는 상황. 안내원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나름 모범시민이 무시하고 그대로 입장할 순 없어 계속 시도를 하다 어느 용자가 옆출구로 들어가는 통에 그냥 따라 들어갔다. 어차피 태그가 되었다고 했으니.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중 나의 막차가 떠나는 게 보였다.
아~~~ 짜증...
적당히 갈 때까지 가다 택시를 타야 한다.
2호선 강남역발 지하철에는 2-30대로 가득했다. 옆자리엔 20대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있다. 여자는 쉴 새 없이 뭔가 재잘거려 오늘 그들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는 첫 만남인 그들. 오늘을 위해 여자는 평소보다 한껏 공들여 꾸미고 나왔다고 했고, 본인 집까지 감의 힘듦을 어필했다. 누군가가 집까지 떠서 옮겨다 줬음 좋겠다, 혼자 가기 힘들다, 이제 곧 내려야 한다. 아무리 어필을 해도 남자는 조용했다.
얼핏 곁눈질을 해 두 남녀를 체크했다. 적당히 귀여운 20대 남녀였다.
꽤나 노골적으로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말인데도, 묵묵부답 리액션을 아끼는 남. 여자가 그리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자신의 역에서 아쉬운 듯 혼자 내리는 여자. 여자가 내리자마자 남자는 자신의 막지하철을 검색하고 뭔가 집에 가는 다른 방법들을 고심하는 것 같았다. 로맨스보다 내 막차가 중요하고 너보다 내 택시비의 무게가 더 버거운 시절이다.
호기롭게 막차 타고 여자를 바려다 주고 차비가 없어 한 두어 시간 걸어서 집에 왔다는 이야기들은 이제는 전설이 된 시절인가 보다.
갈 때까지 가서 택시를 타도 된다만, 괜히 오기가 생겨 안 가본 루트를 총동원해 12시가 넘어도 다니는 심야버스 라인을 찾는다. 택시보다 30분이 더 걸리는 방법을 택하고 추운 버스정류장에 앉아 새벽 심야버스를 기다린다. 가끔 이렇게라도 오기를 부려 내 방법을 밀고 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난 잘 갈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을 때. 이 추위에, 30-40분이 더 걸리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가 원래 원했던 방식을 택하고 싶을 때. 뻔하게 편한 방법보단, 효율이 떨어져도 괜히 추운 낭만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손이 시림에도 무언가 생각을 남길 여유가 생기는 바로 이런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 나의 버스가 4분 뒤에 온다는 기별이 디지털 보드에 뜬다. 우리의 희망도 저렇게 예고를 해준다면 좀 더 참아줄 여력이 생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