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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Oct 04. 2020

예술은 시대를 선행한다

궁극에서 연결된 미래에서 오는 메세지


빌리 엘리시라는 아티스트의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예술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글을 적어 본다. 


나는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공예 미술로 전향하는 것에 실패한 덕분에 예술학부 디자인 졸업장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널리 알려진(?) 디자인 씽킹 훈련을 학부 때 받았고.


지금 생각해 봐도 디자인 수업과 예술학부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의 수업 방식은 꽤 괜찮은 수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졸업 직후 그런 방식들의 적용은 회사 업무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당시는 이런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음) 몇 년의 사회생활과 경영 대학원 이후부터 조금씩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디자인 씽킹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전공 때 배웠던 것들이 경험에 녹여지면서 여러모로 시너지가 났다. 업무상 아이디어를 낸다거나 접근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습관으로 배어 있게 되었고 숨 쉬듯 사물을 관찰하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게 익숙하다. 


뛰어난 머리는 아니지만 대학교 1~2학년 때 학교 도서관 중에 예술학부생들 전용 도서관이 있었는데 거기에 틀어 박혀 있던 때가 있었다. 거기에는 예술 다지인 등의 전공과 관련된 고가의 전문 서적들과 시청각 자료가 방대하게 있는 곳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이 나는 대로 그곳에 가서 탐독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렸을 때지만 그 당시에 자료들을 읽고 보고 생각한 게 있다. ‘예술은 시대를 선행한다'와 '예술은 사조를 반영한다' 두 가지이다. 


신기하게 예술가들은 미래와 해당 분야를 탐구하는 것도 아니고 개발하는 것도 아님에도 시대를 앞서갔고 사조를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래서 '궁극은 통한다'라는 의미를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광범위한 예술 작품들에서 시그널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해석자의 역할일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데 사회의 변화를 깊이 읽어 낼수록 이런 류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미래를 보게 되는 눈이 깊어진다.



광고 음악을 통해 익숙했던 아티스트가 있다. 그녀는 가수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데 우연히 그녀의 동영상을 검색하면서 알게 된 '빌리 엘리시'라는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서 시그널이 다시 온 것을 느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IVaJgv5zE&list=PLsCPTY_MPoPZrzRDbMdl06imZkcwwgFVH&index=9



그녀에게서 읽은 시그널을 생각하면서 몇 년 전에 사진전도 생각이 났다. '데이비드 라샤펠'이라는 사진작가 혹은 아티스트인 그의 사진전이었다. 그는 작고하고 없지만 카메라 렌즈와 기계를 통해 그 자신이 감지한 사회의 변화를 포착하고 은유와 비유를 통해 상상하게 했다. https://www.davidlachapelle.com/

그렇게 졸업 후 도서관의 시간들을 잊고 살다가 이렇게 가끔 만나게 되는 작품들에게서 여전히 시대를 앞서는 시그널이 동작함을 느낀다. 



빌리 엘리시의 음악도 음악이지만 비주얼 아트들은 몹시 백남준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과연 백남준을 알까..  그녀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음악과 영상은 하나이다. 그게 우리 세대를 읽는 방식이다'라고. 그녀의 작품들을 몇 개 살펴보니 '가치관의 변화와 기술 및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지 방식의 변화' 등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아티스트를 통해 다른 비슷한 예술가들을 접하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 태어나는 세대를 읽을 몇 가지의 힌트를 얻게 된다. 


잚깐 스쳐가는 생각이고 누군가 이야기 해 왔던 내용이지만 나 역시 공감하기에 미술과 문학 등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예술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를 남겨 본다. 예술은 미래를 보는 눈을 길러주기 때문에 예술을 가까이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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