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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May 01. 2024

달리는 버스가 주는 말맛

문성해 시인의 혼자만의 버스

나에게 버스란 기다림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탔고, 낑겨 타서 언제쯤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할까 하염없이 창밖을 보며 기다렸다. 그런 내게 문성해 시인이 말해주는 혼자만의 버스는 나의 오래된 추억을 상기시켜줬다. 시에서처럼 시외버스는 아니고 시내버스에서 맨 처음으로 혼자 타서 문 바로 옆에 있는 앞자리에 착석한 적이 있다. 그때 기사님은 자신이 듣는 아침에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아주 큰 버스 유리창을 혼자 전세 내고 멍하니 앉아있을 수 있었다. 보통 나에게 혼자라는 개념은 고독이나 외로움보다는 여유와 한가로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성해 시인의 혼자만의 버스를 단박에 골랐다.


그리고 보통 시에서 죽음 혹은 이별 또는 사랑 아니면 평화 등등 다양한 가치에 대해 깊게 고찰하고 표현하는 시들이 많다. 그런데 문성해 시인의 혼자만의 버스는 되게 일상적이고 평범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문성해 시인은 1998년 신춘문예 당선된 시인으로 1963년 생이시다. 나는 당연히 문성해라는 이름만 보고 남자분인데 왜 앞머리를 커튼처럼 자른 나라고 할까 의아해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까 여자분이셨다. 이것은 마치 노희경 작가님이 사실은 여자라는 사실처럼 내게 꽤 센세이션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무튼 이 시가 주는 매력은 쫀득쫀득 씹을 수 있는 풍선껌처럼 경쾌하고 다디단 일상의 풍경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만의 버스


                        문성해


시외버스를 탔네

차창에 레이스 달린 분홍 커튼이 쳐져 있었네


구중궁궐 같은 버스였네

승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네


어여 기사님아,

선글라스와

뽕짝 노래로

나를 어디로 모셔가나


앞머리를 커튼처럼 자른 나도

오늘은 이 버스의 기분을 알 것 같아

마음속에 들어앉아

저를 멋대로 몰아가는

저 기사님이 이끄는 대로

잉잉거리고 끼끼거리고 짓까부는

이 버스처럼


나도 마음속에

수벌처럼 붕붕거리는 기사님 하나 들어앉아

나를 출렁출렁 저 태양까지 몰고 갔으면


앞머리가

찰랑찰랑

커튼처럼 흔들리는

이 아침에




<출처 문성해 시인의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학동네 2016>



내가 이 시를 고른 이유는 큰 이유가 없다. 정말 단순하고 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인스턴트 라면처럼 후루룩 짭짭 먹고 싶은 시를 찾고 싶었다. 지금까지 몇 편 고르지 않았지만 시를 읽고 생각하고 적는 과정이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은 고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간단하게 와닿는 시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집을 펼쳤다. 마치 타로 카드를 집기 전에 속으로 '올해는 남자친구 생기나요?'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몇 개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딱 요놈이 걸려들은 것이다.


확실히 이런 즐거운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 내가 쓰는 말투도 조금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너무 신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외버스를 탔네

차창에 레이스 달린 분홍 커튼이 쳐져 있었네


초장에 벌써 장소가 드러났다. 얼마나 명쾌한가. 그녀는 지금 시외버스를 탔다고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차창에는 레이스 달린 분홍 커튼이 쳐져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 친구 집들이를 다녀와서 인천으로 3시간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그래서일까. 버스 안의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고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학교 졸업하고 친구와 전주영화제를 보던 중에 친구가 강추한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델타보이즈였다. 그것을 보기 위해 나는 무주산골영화제로 아침에 무주행 버스를 타서 4-5시간 버스를 탔던 것 같다. 그만큼 그때는 아주 절실했다. 혼자 영화도 보고, 영화 보기 전에 닭강정도 냠냠하고, 집 가기 전에 장터에서 파는 장칼국수도 먹었다. 힘들었지만 모든 게 완벽한 하루였다.  


구중궁궐 같은 버스였네

승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네


구중궁궐이 아홉 번 거듭 쌓은 담 안에 자리한 대궐로,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자리한 궁궐을 가리킨다고 네이버 고사성어 사전이 아주 친절하게 알려줬다. 나는 구중궁궐이라고 하길래 당연히 고속버스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앞에 떡하니 시외버스라고 하길래 으잉했다. 하기사 시외버스도 아무도 없다면 아주 널널하고 적막하고 여유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녀는 어디에 가길래 아무도 타지 않은 시외버스를 타는 것일까. 주말에 남들이 다 가는 서울, 부산, 경주, 인천 등등 여행지라면 분명 다 매진되었을 것이다. 보통 주말에는 이동인구가 많으니까 평일이고 평일이면서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어느 한적한 시골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정말 아무도 없으려면 이른 아침이어야 성립되지 않을까.


여기서 시 속의 그녀는 자신이 시외버스를 혼자 탔다는 사실만 알려줬지 어디를 가는지 목적지는 쏙 빼놨다. 정말이지 수수께끼 같은 그녀이다. 그녀는 구중궁궐 같은 버스를 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궐에 살아서 바깥세상을 잘 구경하지 못한 공주의 삶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그런 공주의 곁을 수중드는 궁녀의 삶을 떠올렸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구중궁궐 한쪽에 피어있는 어떤 이름 모를 나무의 삶을 떠올렸을까. 사실 이것은 모두 내 추측에 지나지 않고, 다음 행을 보면 그녀가 지금 이 상황을 얼마나 심취해있고 즐기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속의 그녀는 구중궁궐의 임금님이 되어서 기사님에게 뽕짝 한 가락을 틀어보라고 속으로 명령을 하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여 기사님아,

선글라스와

뽕짝 노래로

나를 어디로 모셔가나


나는 여기서 문성해 시인의 말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어여 기사님아, / 선글라스와 / 뽕짝 노래로 / 나를 어디로 모셔가나'라는 연을 보면 절로 마음이 한가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지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기사님은 햇살이 세서 선글라스를 꼈고 그 기사님의 취향으로 버스 안에는 뽕짝 노래가 틀어지고 있는 중이다. 분명 시 속의 그녀가 행선지를 정하고 버스표를 끊은 것이 틀림없을 텐데 그녀는 기사님에게 나를 어디로 모셔가나 하고 속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시 속의 그녀는 너스레를 잘 떨고, 상황을 잘 즐길 줄 아는 호탕한 여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또 떠오른 것이 요새 내 동생이 자꾸 나에게 '곤듀님은 그런 거 못해. 언니가 해줘.'라고 한다. 어쩌면 내 동생과 저 시속의 그녀와 정신세계가 비슷한 선상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앞머리를 커튼처럼 자른 나도

오늘은 이 버스의 기분을 알 것 같아

마음속에 들어앉아

저를 멋대로 몰아가는

저 기사님이 이끄는 대로

잉잉거리고 끼끼거리고 짓까부는

이 버스처럼


앞머리를 커튼처럼 자른 나도, 이 표현도 나는 단순하지만 멋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에 버스 커튼이 나왔는데 자신의 앞머리를 또 커튼이라고 표현한 점에서 한 번 쓴 표현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즐거운 기분이 드는 표현이다. 뒤에 이어지는 문장 또한 그러하다. '오늘은 이 버스의 기분을 알 것 같아' 이 문장은 어떻게 보면 도대체 버스의 기분이란 무엇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버스의 기분이란 표현은 마치 커피 로스팅을 잘 하는 카페에서 파는 오늘의 커피를 마시는 기분 같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신선하고 팔딱팔딱 뛰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여기서 시속의 그녀는 주체에서 벗어나 객체가 되어 버스 기사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마음속에 들어앉아, 저를 멋대로 몰가나는, 저 기사님이 이끄는 대로, 라는 표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그녀는 그런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워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순간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회사에 가서도 상사가 맡긴 업무를 주체적으로 주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완성해내서 상사에게 다시 컨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친구가 안내해주는 가이드 여행을 따라가는 소녀 마냥 신나있는 게 눈에 훤히 그려진다. 그리고 뒤 이어 '잉잉거리고 끼끼거리고 짓까부는'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생동감 있고 좋았다. 버스가 내는 소리를 이렇게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적은 것을 시를 읽으면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짓까불다는 함부로 마구 까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버스가 촐싹대고 마구 까부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내면은 버스처럼 그녀도 짓까불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지금 시외버스의 혼자만의 버스는 그냥 단순한 버스가 아니다. 세 사람이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이쯤 되니까 버스도 하나의 인격체로 보인다. 시인이 앞에서 잉잉거리고 끼끼거리고 짓까분다고 해서 그런가. 이웃집 토토로에서 고양이 마을 버스처럼 혼자만의 버스에 나오는 버스도 어딘가 인격이 존재할 것만 같다.



나도 마음속에

수벌처럼 붕붕거리는 기사님 하나 들어앉아

나를 출렁출렁 저 태양까지 몰고 갔으면


간단한 표현이지만 간단한 기분을 주지 않는다. 몽글몽글 잘 뭉쳐진 계란찜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마음속에 수벌처럼 붕붕거리는 기사님 하나 들어앉아 나를 출렁출렁 저 태양까지 몰고 갔으면, 이란 표현은 곱씹을수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수벌이란 단어가 좀 생소하지만 뒤에 붕붕이란 단어를 보고 수컷 벌이라는 것이 연상이 되었다. 그리고 출렁출렁 저 태양까지란 단어를 보고서 어쩌면 지금 시간이 막 동이 틀 무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말이 '수벌' '붕붕거리는' '출렁출렁' '태양' 되게 동화적이라는 느낌도 물씬 난다. 혹은 가삿말이 예쁜 어떤 노래 같기도 하다. 지금 시 속의 그녀는 저 출렁출렁이란 말처럼 되게 들뜨고 유유자적한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 기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도 행복해진다.


앞머리가

찰랑찰랑

커튼처럼 흔들리는

이 아침에


마지막은 다시 앞머리로 돌아와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커튼처럼 흔들린다고 하고 있다. 드디어 마지막에 말해주고 있다. 아주 간략하고 정직하게 '이 아침에' 라고 말이다. 내가 문성해 시인의 혼자만의 버스를 읽으며서 느낀 점은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따뜻한 기분을 잘 전달해주는 시인이란 것이다. 수식어를 많이 잘 이어붙이는 것도 어렵지만 저렇게 간단하게 표현하면서 맛있게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시를 공부하고 써본 입장으로 혼자만의 버스라는 시는 되게 좋은 시 같다. 왜냐하면 표현도 아름답지 그리고 공감도 되지 동시에 읽기 어렵지 않지 등등 장점이 많은 시다.


단순한 일상을 어떤 포토그래퍼가 핸드폰 카메라로 아름답게 담아낸 듯한 시 같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정말 좋았던 점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고, 감상문을 적을 때에도 마찬가지도 쉽게 글이 써내려가진다는 점이다. 고뇌하는 사람도 아름답지만 그 기분에 충실할 줄 아는 사람도 아름다운 것 같다. 물론 시인은 시를 쓸 때 고민을 했겠지만 말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기분 이런 감정을 전달해준 점에서 되게 멋진 시인 같다. 처음 들어본 시인인데 문성해 시인 이름이 앞으로도 기억에 날 것 같다.


그리고 책 제목을 까먹고 있었는데, 제목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라고 하는 것처럼 어딘가 상투적이기도 하고 또 일상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무난하고 흔한 말이다. 진심으로 나는 문성해 시인의 시집을 고른 내 손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안 그래도 요새 생각도 많고 지치는데 그럴 때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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