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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 Oct 31. 2020

이유 없는 호의는 경계대상

콜롬비아 커피의 도시, 살렌토

커피의 마을 살렌토를 맞이한 첫 풍경은 이랬다.


새벽 5시, 야간 버스는 우리를 내려 주고 유유히 떠났고, 어두운 산속에 나를 비롯한 네 명의 여행자가 남았다. 그러자 낯선 남자 한 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른 시간이라 열린 숙소가 없어. 예약한 숙소가 있더라도 아직 새벽이라 체크인이 어려울 거야. 그래서 우리가 동이 틀 때까지 머무를 장소를 제공해 줄게. 일단 따라와. 마을은 이 쪽이야. "


25년 여행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낯선 장소에서 달콤한 제안으로 말을 거는 낯선 이는 위험한 사람일 확률이 99.9%에 수렴한다.


그러나 어차피 마을로 가려면 길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경계하면서도 그 남자를 따라가야만 했다. 실제로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고, 마을은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어두웠다.


마침내 도착한 장소로 안내하는 남자.


그 안에서는 따뜻한 온기와 함께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이 곳을 "Orientation Place, 오리엔테이션 장소"라고 소개했는데, 평소에는 카페와 식당을 겸한다고 한다.


" 원한다면 음식, 음료를 주문해도 되지만,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쉬어도 좋아! "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며, 아늑한 자리를 내어 준다. 남자의 호의에 나와 다른 여행자들의 경계심도 조금씩 풀어졌다.


우리 일행은 나를 포함해 혼자 여행 중인 프랑스 여자 대학생, 함께 여행 중인 콜롬비아 친구 2명까지 총 4명이었다.


카페 내에는 우리를 인도해준 남자 외에 다른 남자들도 있었는데, 여기서 일하는 직원인 것 같았다.


긴 시간 야간 버스 탑승으로 인해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와이파이를 잡아 신나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말을 꺼낸다.


" 곧 있으면 해가 뜨는데,

원한다면 일출을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가이드 투어를 해줄게!


참고로 비용은 전부 무료야."


별도의 팁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고,

나도 미리 예약한 호스텔이 문을 열 때까지 딱히 할 것이 없었으므로, 그들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살렌토 도시에는 길 강아지가 많았다. 그들이 앞장선 길을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 가이드라고 자칭하는 그 친구는 가는 길 골목마다, 살렌토의 역사에 대해 낱낱이 설명해 주었다.

벽에 그려진 야자수 그림을 설명하며

"커피의 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현재는 커피가 재배되지 않는다. 살렌토에서 조금 떨어진 아르메니아, 페레이라 등이 콜롬비아 커피의 주 생산지이다. 코코라 벨리에서 볼 수 있는 야자수는 살렌토 지역의 독특한 기후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여행 중 가이드북을 꼼꼼히 보는 성격도 아니며, 가이드 설명을 집중해 듣는 편이 아니다. 그 시간을 아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번에도 그랬다.


전망대에서 살렌토의 일출을 내려다 보고, 다 함께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돌아왔다. 아침을 맞이한 마을 사람들은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일정을 함께 했던 콜롬비아 친구에게 물었다.


" 너무 이상하지 않아?


처음 본 우리를 새벽에 머무를 수 있도록

무료로 장소 제공해주고,

와이파이를 사용하게 해 주고,

무료 가이드 투어까지 해줬잖아."


그리고 친구는

단 한 마디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 친구야, 여긴 콜롬비아야. "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와 따뜻함이 존재하는 이 곳.


야간 버스 시간에 맞추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의도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살렌토의 첫인상을 누구보다 먼저,

따뜻함으로 채워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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