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복

오후 알바를 그만두다 (감정일기_2025.11.11.화)

by 쓰담홍

오늘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출근해서 수십 번을 ‘조퇴할까 말까’ 망설였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지만, 잠이 쏟아져 내렸다. 몸이 땅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일로 조퇴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꾹꾹 참으며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벗어 던지고 전기장판 온도를 높인 뒤 누웠다. 식은땀을 흘리며 몇 시간을 정신없이 잤다. 그리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제 나는 고민 끝에 저녁에 하던 알바를 그만두기로 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안내데스크 자리라고 해서 단순히 안내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주 업무는 데스크 업무에 더해 매일 블로그에 글을 한 편 올리고, 영상 두 개를 만들어야 했다. 클립 1개, 인스타용 1개. 그들 입장에서는 간단한 영상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 이거 배우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배워야 하나’ 하는 현타가 오기도 했다.



금요일, 퇴근 후에도 피드백 카톡이 계속되었다. ‘그래, 내가 잘 모르니까 알려주려는 거겠지.’ 그러고 넘겼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또 카톡이 시작됐다. 나는 화·목·금 저녁 4시간 알바생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직원인 줄 착각하는 걸까? 아니면 요즘은 알바도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어떠하든, 나는 최저시급을 받으며 이들의 열정을 따라갈 의사가 없었다.



고민 끝에 월요일 저녁, 센터에 들러 알바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실장님께 전달했다. 그 뒤 아무 소식이 없는 이들 ㅋㅋㅋㅋㅋ

아 뭐야, 알바비도 안 주는 건가? 차마 나도 ‘달라’는 말을 못 하겠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3일 동안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 열심히 전달했으니까. 하나씩이 아닌 모든 걸 한 번에 몰아넣으려는 이들의 열정! ㅋㅋㅋㅋ 젊은이들~~~

안다. 이들이 지금 으쌰으쌰하며 센터의 번성을 꿈꾼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고, 그래서 빠른 정리를 택했다. 마음이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그래, 여기서 이렇게 에너지를 쏟을 바엔 내가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쏟아보자. 당장 눈앞에 돈이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더 큰 나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가려는 방향을 믿고 가자. 어차피 마음이 담기지 않아 나올 것이면.



내가 이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금요일 양산에서 브로콜리들과 『호의에 대하여』(문형배)를 읽고 토론한 게 한몫했다. 지연님의 마지막 논제는 ‘나에게 공부란?’이라는 질문이었다.

① 공부는 삶, ② 공부는 깨달음, ③ 공부는 새로움, ④ 공부는 즐거움 —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평소 나는 ‘삶은 공부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왔고,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 여겨왔다. 공부는 삶이라는 관점보다는 삶 자체가 공부라는 관점이었다. 사실 이 네 가지가 다 어우러져 있는 게 아닐까 싶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깨달음’을 택했다.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경험도 지식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수연님의 발언을 듣고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나는 이제 즐겁지 않으면 안 해요. 글쓰기 해보니까 즐겁지 않으면 안 하잖아요. 취미도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즐거운 것만 해요.”(뉘앙스만 기억나서 이렇게 적는다.)

정말 수연님을 보면 그렇다. 무엇을 하든 즐기며 하는 게 보인다.

‘아, 이런 거구나!’

나는 그렇게까지 즐기지 못한다. 즐겁지만 그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많다.



양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말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즐겁게 산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가? 저녁 알바에 익숙해졌을 때, 내 마음은 어떨까? 뿌듯할까? 성취감을 느낄까?’

이런 질문 앞에서 쉽사리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 이건 별로네’였다. 그래서 월요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바로 실행했다.



시작도 끝도 너무 가벼웠던 걸까? 그렇지 않았다. 나름 꽤 큰 고민 끝의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번복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되는 걸 알면서, 그 이유의 타당성을 스스로 합리화하려 애쓰는 내가 보인다.



제일 큰 이유는 뻔하다. 조급함!

제발 여유를 가지자. 당장 무엇을 안 한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기다려준다’는 말이 지금 또 필요한 시점이다.

제발, 스스로를 들들 볶지 말자. 다 또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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