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노동에 대하여

영화 <블루재스민>을 보며

by 쓰담홍

우디 앨런 감동 <블루재스민>은 뉴욕 상위 1퍼센트의 부유한 삶을 살던 재스민이 남편의 몰락과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 부를 잃는 이야기다.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동생 진저의 집에 머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재스민은 노동과 자립을 향한 시도를 하지만 오래가지 않고, 다시 타인에게 기대어 삶을 회복하려 한다. 그녀는 아들을 찾아가 마지막 관계를 붙잡으려 하지만 아들은 과거를 끊기 위해 그녀를 거부한다. 영화는 결국 재스민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현실과 단절된 채 남겨지는 모습으로 끝난다.


극 중간중간 재스민은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며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을 보내온다. 그 눈빛을 마주할 때 나도 같이 불안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상위 1%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보통의 삶 또는 가난한 삶을 살게되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예 그 부를 몰랐다면 더 나았을까, 아니면 '한때 이런 삶도 있었지'라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편이 나았을까.


재스민은 동생 진저의 집에서 머무르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주변의 사람들이 그저 '루저'같아 보인다. 진저가 치과에서 환자 응대하는 일을 권유하자 그런 '하찮은' 일을 어떻게하냐고 반문한다.


<영화 속 대사>

진저: 에디가 말한 치과에 취직해볼래?

재스민: 그런 하찮은 일을 어떻게 해? 난 돌아버릴걸. 난 학교로 돌아갈 거야. 학위도 따고 뭔가 중요한 일을 할 거라고. 단순 노동은 못해. 매디슨 애비뉴에서 구두를 잠깐 팔아봤는데 너무 치욕적이었어. 우리 집 파티에 왔던 친구들이 왔었거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한 때는 안주인이었는데 이젠 구두나 신겨주고 있다니. 에리카 비숍도 가게에 왔었는데 날 보고 움찔하더니 내가 못 본 줄 알고 몰래 나가더라고. 내가 다 봤거든, 에리카!


그러나 재스민은 '학위를 따고 뭔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결국 재스민은 자신이 '하찮은 일'이라 말한 치과에서 일을 시작한다. 단순노동이라고 말했지만 재스민이 업무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하지 않다. 나름의 숙련과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 노동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재스민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닌가. 나는 벌써 단순노동을 하고 있는 중이니 크게 고민할게 없는 질문일까. 그렇다면 내가 단순노동을 하게된 계기는 무엇일까?


올해 육아 16년 차다. 두 아이 모두 이제 중학생이 된다. 딸들을 보고 있으며 그저 마음이 흐믓해진다. 무탈하게 잘 자라 준 딸들. 아직 엄마를 좋아해 졸졸 따라다니고, 자기 전이면 "엄마 안아줘."라며 항상 품을 찾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기까지 나는 곁에서 충분히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다. 사랑은 마음과 말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성 어린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스며든 나의 몸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나의 삶에서 늘 우선순위는 아이들이었다. 일을 선택할 때의 기준도 늘 분명했다. '아이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력 단절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고, 나의 손길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다. 지금은 서로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해야 할 시기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비로소 찾아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이 무언인지 아는 것이다. 이걸 알고 있다면 그나마 큰 방황없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와 의지가 없다면, 재스민처럼 중도에 보기하고 타인에게 기대는 삶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자원환경공학을 전공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15년 간 일했다. 이후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서 2년간 일을 했고, 놀이시터 활동도 3년 정도 했다. 작년에 다시 다른 일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그때 고른 일이 지금의 일이다. 하루 4시간 30분 동안 청소 노동, 어린이집 보육도우미 '청소지원' 일이다. 당장의 커리어보다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책을 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입.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첫 시작은 쉽지 않았다. 출근 전까지는 '청소가 뭐 별거 있나' 싶었다. 그저 '일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걸레를 들고 화장실을 닦고, 변기를 솔로 문지르며 땀을 흘리자 현실이 몸으로 다가왔다. 나는 청소 노동자가 되었고, 그 사실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걸. 평소에 "아무 일이나 하며되지. 할 거 없으면 설거지나 청소라도 하면되는 거 아니야."라고 떠들어대던 오만한 나를 마주했다.


청소일을 시작하며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무슨 일하세요?"라는 질문에 "청소해요"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그 불안이 전해졌는지, 상대의 눈빛에서 괜한 '동공 지진'을 읽어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청소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더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필사 모임을 운영하고, 아티스트웨이와 감투성 일기쓰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며, 내가 배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기꺼어 가서 배움을 청한다.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청소일을 한다고 말하는 게 조금도 어렵지 않다. "저 청소해요." 몸은 가벼워졌고, 오전에 일하고 오후 한 시에 퇴근하면 나머지 시간은 내 것이다. 어린이집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의 해방감은 아직도 새롭다.


노동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노동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재스민이 타인에게 의존하기 이전에 노동의 참맛을 조금 더 오래 겪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재스민에게 땀흘리는 일을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말도 함께 건네고 싶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해. 그냥 하면 돼.' 그럼에도 누군과 제대로 된 연결되지 못한 그녀를, 나는 한 번쯤 꼭 끌어 안아주고 싶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한편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기대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관계란 그런 것 같다. 사람 인(人) 자처럼, 서로의 등이 되어주는 것. 재스민에게 아마 이런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등을 내어주고, 받쳐주는 걸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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