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죽이고 자란 아이는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임경선>을 읽으며

by 쓰담홍

p.37) 10대 시절 마냥 행복했던 이들은 훗날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 각자의 방식으로 부대끼거나 상처 입거나 힘겹게 보낸 사람들이 나중에 자라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혼자 무거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그 아이는 생각을 하거나 상상을 한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연하고 취약한 시절에 느낀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이 그 사람의 토대를 만들고, 그 시절에 각인된 선명한 상처들이 평생에 걸쳐 얼굴을 남기지 않던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는 글쓰기인 것. 지금 우리를 쓰게 만드는 대부분의 이유는 예민했던 10대에 그 뿌리가 있지 않을까?

<글쓰면서 생각한 것들, 임경선 / p.37>



"10대 시절 마냥 행복했던 이들은 훗날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읽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아직도 눈물이 새어 나온다. 마치 작가가 내 10대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는 것 같아서다.



나는 어린시절, 어린이라는 자리에서 어린이다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그보다는 빨리 성숙해야 했다. 심부름을 잘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보다 먼저 알려줘야 할 것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른들은 그걸 알려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 마음 한편에는 그런 원망이 깔려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따귀를 맞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렸고, 수치심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학교 숙제와 준비물이 뭔지도 모르고 떨렁떨렁 다니던 나는 늘 부족한 아이였다.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했고, 받아쓰기 점수가 낮아 또 남았다. 4학년 때 통지표에 수학 '가'가 찍혔을 때 그걸 숨기느라 애를 썼다. 엄마는 야단치지 않고 나를 수학 학원에 조용히 보냈다. 그건 지금도 고마운 기억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숨을 죽였다. 누워 계신 할아버지의 부름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늘 나를 불렀고, 심부름은 바로 시작됐다. 제삿날이 일 년에 열두 번 넘게 있었고, 엄마를 따라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나눠 들었다. 명절에도 나는 늘 바빴다. 그 시절 나는 아이였지만 집안 일을 눈치껏 해야 했다. 먼저 알아서 해야 하는 눈치, 말대답하지 않는 역할. 하지만 나는 가만히 하라는 대로만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왜 나한테만 그래?" 엄마에게 자주 대들었다. 어느 날은 정말 크게 맞섰다. 그날 엄마는 지쳐 있었는지, "그럼 나는 누구한테 그러니?"라는 말고 함께 눈물을 보이셨다. 그날 이후 나는 체념했다. 아, 어쩔 수 없구나. 이건 내 몫이구나.



병든 할아버지, 늘 아프다고 말하는 할머니, 퇴근하자마자 언성을 높이는 엄마, 지방 근무가 많았던 아빠. 할머니와 엄마가 싸운 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가 집안을 부수던 밤. 그 시간들은 끔찍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돌아오기 전 집을 조금이라도 치워 놓는 일, 동생을 챙기는 일, 내 할 일 알아서 하는 아이가 되는 일이었다.



나의 10대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내 곁에 없다는 생경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걸. 늘 따뜻한 밥을 먹었고, 따뜻한 옷을 입었고, 안전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그 사실과 외로움은 동시에 존재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동네에 시립도서관이 생겼다. 그 이후 그곳은 나의 안식처이자 도피처가 되었다. 주말이면 공부하러 간다며 책가방을 싸서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어떤 날은 책을 펴지 않은 채 엎드려 잠을 잤고, 어떤 날은 도서관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해 질 무렵 집에 갔다. 그래도 그 시간 덕분인지 고1 때 성적이 꽤 좋았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 전까지는.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하자 선생님은 말했다. "거기서 남자 만나니?"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친구와도 가지 않던 도서관이었는데. 외모에 자신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말은 상처가 되었고, 괜히 눈치가 보여 그 이후로 나는 그 도서관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곳에는 연애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걸. 나는 그저 내 세계에 너무 깊이 갇혀 있었을 뿐이었다.



공부에 대한 흥미는 다시 식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10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나 꾸준히 책을 빌려다가 읽었고, 책을 읽은 후 몇 줄씩 나의 감상을 쓰기도 했다. 일기장의 알 수 없는 외로움을 적어 내려가기도 했다. 임경선 작가 말하듯 나는 그 시절을 견디기 위해 책을 읽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끄적이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잘 보듬어 주기 위해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시절에 생긴 그 습관과 감정의 결이, 결혼과 육아로 다시 삶이 버거워졌을 때, 다시 나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으로 책과 글쓰기를 찾은 거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