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책 전집 털컥 구매

by 쓰담홍


독박 육아 고공행진 중, 민이 100일 지났을까?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산후조리원에서 딸랑이 만들기 강의했던 강사한테 전화가 왔다.




“별똥이 잘 크고 있죠? 별똥이한테 동화책 한 권 선물로 주고, 아이 키운 거 힘들죠? 내가 가서 아이 키우는 정보 좀 알려줄게요. 책도 좀 보여주고. 언제 시간 괜찮아요? 집으로 가도 될까요?”




그 당시 나는 너무 외로웠기에 누가 와준다고 하는 말이 그저 좋았던 거 같다. 나는 바로 걸려든 것이다. 나는 책 영업사원의 먹잇감이 되었다. 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영사를 우리 집에 들여놓았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p.128 그 다정한 미소가 고맙고 기뻐서 저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 다정한 미소 하나에 저는 인생의 완전한 패배자가 되어 매장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업사원 둘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우리 민이를 너무나도 정성스럽게 봐주었다.



민이의 기침소리에 등을 토닥여주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편하지 알려주었다. 정말 아이 키우는 거 일도 모르는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진심으로 너무 고마웠다.




그리도 다른 영사는 나에게 아이의 두뇌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의 두뇌에는 다섯 가지 방이 있고, 이 방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결국 영역별로 골고루 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설명을 듣고 있는데 꼭 그 책들을 다 사야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의 가격을 듣고 너무 깜짝 놀랐다. 책이 20권 넘었나? dvd랑 놀잇감도 같이 있는 구성이었는데 50만 원 가까이 됐던 것 같다. 전집 한 즐이 50만 원이라니.. 그럼에도 나는 신랑에게 전화를 했고, 신랑은 사고 싶으면 사라고 했나 어쨌나... 기억도 잘 안 난다. 그 당시 나는 곧 내가 복직을 할 거라 생각을 했기에 비싼 금액에도 불구하고 덜컥 그 책을 샀다. 한 즐 정도는 필요하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두 영사에게 너무 고마웠다. 물론 나에게 책을 팔려고 잘해 준 것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순진했지. 그래도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인해 절친이 되었다. 두 명 중 한 명이 지금 나의 절친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엄청난 책 전집과 교구를 풀세트로 샀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지만, 원망을 하지는 않는다.


다 내가 결정한 것이고, 내 탓이니깐.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암튼 그 당시 나는 그로 인해 삶의 활기를 조금씩 되찾아갔다. 누군가에게 육아에 관해 조언을 받을 수 있었고, 아이와 놀 거리가 생겼다.




그 이후로도 영사는 나에게 연락을 계속했고, 좋은 부모 교육이 있다면 나를 본사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 강의를 듣고, 또 영사의 꼬임에 빠져 계속 책을 샀다.




그럼 돈은?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영사는 카드 긁는 방법과 보험 약관대출 등등 돈을 융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럼 신랑은? 영사는 신랑에게 말하면 신랑들이 다 사지 말라고 한단다. 육아에 있어서는 아빠의 무관심이 최고라고... 나는 또 바보 같은 우리 신랑을 속였다. 그랬다.


영사 탓 아니다. 내가 주체성이 부족했던 거였다.


신랑 몰래 카드 할부를 있는 데로 긁었고, 신랑 몰래 보험 약관 대출을 받았다. 양육수당과 육아 휴직 비 나오는 것도 다 책값 갚는데 들어갔다.


여기에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복직도 미루어졌다.




그러자 영사는 나보고 책 영업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발을 빼고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또 발을 들였다.




민이가 6개월 정도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나는 민이를 어린이집 맡기고 책 영업을 시작했다. 영사는 나에게 어린이집도 소개해 주고 육아 정보도 주며 정말 잘 챙겨 주었다. 하지만 그건 미친 짓이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닌데 돈에 발목이 잡혀 어리디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영사를 하면서 배운 점도 있다. 영사를 하면서 내가 모르던 지식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강의를 많이 해주었다.


물론 이것 역시 책을 팔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긴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지식이기도 했다. 하버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이나 스팀교육 등등 다 여기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거 조금 모른다고 어떻게 되는 문제 아니었다. 차라리 몰랐던 게 낫다. 그런 정보 몰라도 내가 마음에 드는 책 한두 권 사서 아이랑 읽고, 눈 맞춤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더 좋은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 인생 최대의 실수. 바보 멍청이 었다.





나는 선임영사를 따라 영업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고객에게 ‘사세요. 너무 좋아요!’라고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내가 나를 들여다보니

‘나 지금 책 사서 너무 힘들어. 남편한테 거짓말하고, 몰래 빚지고, 정말 내 마음이 지옥 같아.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고생하고. 나는 책도 못 팔고. 정말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사세요!’ 할 수 있어. 나는 도저히 사라고 말을 못 하겠어. 어쩌다 책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양심이 가책이 느꼈다. 그 사람들이 나 같은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무언가 그 사람한테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이 팔릴수록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레이먼드 카버, [비타민], [대성당],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2014, 132쪽

이따금 얼어붙어서 초인종을 누르지도 못하는 여자들이 나왔다. 또 대문 앞까지는 갔다고 하더라도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는 여자들도 있었다. 혹은 인사만 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그 순간에 아직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을 뒤죽박죽 섞어대는 여자들도 있었다. 이런 여자들은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샘플이 담긴 가방을 든채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내달려, 패티와 동료들이 일을 끝마칠 때까지 빈둥거리곤 했다.


(작문연습) 얼굴이 경직된 상태로 손을 바들바들 떨며 초인종을 누르는 여자가 있었다. 또는 현관 앞까지 가서 집주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여자도 있었다. 더러는 차분히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되는데 허둥지둥 눈치를 보며 몹시 부산스럽게 구는 여자도 있었다. 이런 여자는 시작도 전에 기선 제압에서 져버렸고, 샘플 북을 들고 설명하는 동안에 상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마무리하곤 했다. 결국 제대로 된 클로징 멘트도 못하고 그 집 문을 닫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배운 게 있다. 길치여서 지하철만 타고 다니던 나는 드디어 서울에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든 찾아서 가면 된다는 것.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힘든 나였는데, 그게 별거 아닌 게 되었다는 거. 그리고 아이 보는 게 능숙해졌다. 그리고 그림책이 너무 좋아졌다. 아이와 책 읽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매일 우리 민이와 뭐 하고 놀까? 오늘은 무슨 책 읽지? 민이의 반응은 어떨까?




힘들었지만 정말 매일 민이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꼭 끌어안고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동요를 부르고, 퇴근해서도 꼭 끌어안고 이야기를 나누고(물론 혼자 이야기했지만), 노래를 불렀다. 내가 부르는 노래에 민이는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좋아했다.


집에 와서도 민이와 함께 즐겁게 놀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이 힘들었지만 그 대신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의 신뢰는 점점 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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