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하먼 멜빌 소설 / 문학 동네, 2012>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는 처음 이 말을 뱉은 이후 상사(변호사)가 지시하는 그 어떤 것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왜 계속 '안 하는 편을 택'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한 번 결정한 일에 대해서 번복함 없이 끝가지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상대방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끝까지 내세우는 건 합당한 일인가? 나도 살면서 하고 있는 것들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있었지만 지속해 나갔다면 그때 그 심정은 어땠는가?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도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싶은 게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고, 안 하는 편을 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한 문장으로도 수많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이 문장은 하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인물, 바틀비가 하는 말이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로 취직한다. 처음에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해나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서를 검정하는 작업을 하자고 변호자가 지시하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이후 앞에서 이야기했듯 바틀비는 변호사가 내리는 지시를 하나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틀비는 사무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은신처로(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한다.) 여깁니다. 변호사는 그의 이런 태도를 연민으로 바라보고 동정하지만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바틀비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는 둥, 자신의 집에 지내는 건 어떻겠냐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며 그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편으론 그의 사무실을 떠날 수 있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 봅니다. 하지만 바틀비는 그 사무실에서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변호사는 사무실 이사를 감행합니다. 바틀비는 거기까지는 쫓아오지 않지만 이전의 사무실 그의 자리에 여전히 남아 생활합니다. 결국 그는 부랑자로 취급되어 구치소로 보내집니다. 구치소에서 바틀비는 안 먹는 편을 택하고 삶을 마감하는데요.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이토록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있었던가? 이랬을 때, 나는 어땠을까? 아니면 바틀비에겐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 무엇이 바틀비를 이지경으로 가게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 바틀비는 '기계적'을 필사를 해 나갔습니다. 저도 이럴 때가 있었습니다. 그 '기계적'인 일이 감사한 마음이기까지 했지요. 코로라 19의 직격타를 맞고 24시간 보육을 하던 시기.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면재해조사를 주 업무로 하면서 지반조사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었어요. 간단한 업무를 부탁하며 출근 가능여부를 물어봤고, 저는 아이들이 어리기에 재택근무를 건의해 봤습니다. 다행히 재택근무가 받아들여졌고, 2020년 10월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어요. 그 어려운 시기,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기쁘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 업무는 현장에서 올라오는 수기 야장을 데이터화시키는 거였습니다. 한 과업당 작게는 50개 안팎, 많게는 1000개 정도 되고, 평균 100~200 정도의 현장조사가 진행돼요. 야장을 데이터화시킨 후에는 위성영상을 이용한 위치도 및 수치지도(캐드)를 이용한 위치도 작업을 합니다. 거기에 현장을 재해별로 분류를 하고, 위험도 분석 수치를 넣어주는 작업을 하지요. 물론 위험도를 잡거나 평가하는 일은 현장과 사무실에서 처리해서 옵니다. 저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을 하는 업무였어요. 그러니 만큼 반복적인 작업이 많았습니다. 하나 시작하면 100개 이상 같은 일을 해야 했어요. 인내심이 많이 요구되었지요. 처음에는 현장에서 올라온 야장 처리만 부탁했지만 연차가 지나갈수록 요구되는 업무량이 많아졌어요. 계약기간도 처음엔 1년이었지만 점점 늘어나 5년이나 흘러갔습니다. 일용직으로 시작했었는데, 어느덧 정직원이 되어있었고요.
3년 차가 되어갈 때쯤, 심각하게 고민되기 시작했어요. 1~2년이면 그만둘 줄 알았던 일이 지속되어 가니 갑갑함을 느꼈어요. 하루 종일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근무하는 건 생각보다 사람을 지치게 했어요.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자신들을 봐주지 않으니 서운해했고, 저는 책상에서 일하다가 거실로 나가면 난장판인 집과 마주해야 했어요. 업무가 끝나도 쉴 틈 없이, 잠깐의 여유 부림 없이 살림에 향해 돌진해야 했죠. 물론 쉬긴 쉬었지요. 불편하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마주하면서요. 불편했습니다. 코로나19가 차츰 나아지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시작했지만 학원 가기 전에 간식을 챙겨주고, 병원을 데리고 다니는 사소한 일들은 저의 몫이었지요. 엄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일도 하는 거였으니깐요. 이런 삶이 지속되었어요.
어느 날 문득 저를 돌아보니 몇 달 동안 가족 아닌 사람을 만난 적이 없더라고요. 가족과 일이 제가 맺고 있은 인간관계가 다였던 거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숨이 턱턱 막혀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그만두려지 아쉬웠어요. 걱정됐어요. '이 보다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버는 만큼 벌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만큼 내적갈등은 커졌고, 남편에게 자꾸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에게 불만을 이야기해서 좋아질 건 없었어요. 오히려 관계만 더 악화시킬 뿐이었죠. 언제나 남편에게 돌아오는 말은 "그럼 그냥 그만둬."였어요. 맞는 말이죠. 그럴 수밖에요. 그런데 용기가 부족해서 결국 꾸역꾸역 이어갔어요. 그 대신 온라인 책모임에 참여하며 환기를 조금씩 했어요.
2024년 11월 1일,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회사 사정이 어려워, 제가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거죠. '권고사직!' 처음에 멍했어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 걸까? 사실 실업급여를 받고 싶어서 제 입으로 먼저 "그만두겠습니다."를 못하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어요. 한 동안 일이 뜸해서 나 이제 유령직원 그만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예상했던 일이고, 바랐던 일 앞에서도 역시 '돈'과 '일'이 갑자기 소멸된다는 것에 겁이 덜컥 나긴 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감사히 일 잘했다는 말을 전하고, 가벼운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실업급여받는 기간 동안 나에게 휴식을 주기로 결정했지요.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만둔 겪이었지만요.
이게 나는 이렇게 힘들어서 "그만두겠습니다."도 못하는 나인데, 바틀비는 어떻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게 습니다."말하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까요? 이 행동이 모두 바르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보입니다.
바틀비는 왜 다른 방향을 고려해 보지 않았을까요? 다른 방향을 고려해 봤지만, 방법이 없었을까요? 구치소 안에서 먹는 것을 안 하는 편을 택한 것은, 삶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해 나갈 때가 있어요. 이 안에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지금 하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사라져 버릴 것들, 이별에는 상실이 분명 따르지요. 상실감을 이겨낼 자신감,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별로 인해 새로운 것이 올 것이라 걸 알지만 그것이 형체가 없기에 막연함에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타의로 그만둔 일이긴 하지만 다음번에 사면재해 업체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과감하게 안 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돈을 내놓고, 지금까지 중 가장 오래 한 일을 내려놓고, 4시간 노동의 일을 선택했어요. 비록 땀 흘리는 노동이지만 '기계적'인 일이라 여겨지지 않고, 나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바틀비도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 읽을 때마다 달라지고, 토론할 때마다 다른 지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 안 읽어 보신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추천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