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에세이 <일기시대>를 읽으며
우리는 서로의 일기를 읽는다. 한때 우리는 시보다 일기를 더 사랑했다. 나는 친구들의 일기를 읽으면서 일기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서로의 일기를 읽으면, 나의 영혼은 친구들의 영혼과 미묘하게 뒤섞이면서 나는 약간 내가 아니게 되고, 친구들도 약간 그 자신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뒤섞였다. (p.34)
<일기시대, 문보영> 민음사, 2021
나는 매일 기록을 한다. 일명 감투성 기록이라고 칭하지만 사실 이건 일기다. 사람에 따라 일기라고 하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개하거나, 함께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장벽을 낮추고자 '일기'라는 말보다 '기록'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입에 잘 붙지 않아 나의 진솔함이 담겨있는 언어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감투성'은 '감사+감정+성공'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造語)이다. '감(感)'이 둘, '성(成)'이 하나. 매일 '감사, 감정, 성공'을 키워드로 하루를 기록하며, 매일의 경험을 성찰하는 내면 기록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9월부터 '감투성'을 쓰기 시작했다. 2023년 마무리를 100일 앞두고, 그러니깐 2024년 새해를 100일 앞두고 킨더줄리에서 하는 '100일의 기적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100일 동안 주요 키워드와 계획을 잡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건강 챙기기와 독서를 키워드로 잡았다. 그때도 여전히 지금처럼 책 읽기와 필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그냥 흘려보니가 보다 무엇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성공 일기) 블로그에 기록하고 싶었다. 거기에 노트에 따로 쓰고 있던 감사 일기와 감정 일기를 추가했다. 그러면서 카테고리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여기에 감정에 대한 피드백이 있으면 조금 더 선명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피드백&바람'도 추가했다. 이렇게 하던 게 지금의 '감투성'의 틀이 되었다.
다이어리와 감사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 하지만 다이어리와 감사 일기장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긴 항상 부족했다. 나중에 그 자취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무슨 말을 쓴 건지, 무슨 글씨인지. 빼곡하게 쓰기도 했지만 공간이 부족해 여기저기에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쯤 어깨에 무리가 가기 시작해 침을 맞고, 정형외과 출입이 잦아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손글씨를 자제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손글씨 쓰기인데!)
그러나 이렇게 좋아하던 행위도 혼자 하다 보니 느슨해졌고, 일기임에도 누군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감투성' 메이트를 구했다. 같이 매일 일상을 나누는 친구. 얼마나 좋은가!
쓰담쓰다 필사 모임에서 필사를 함께하는 분들과 감투성을 쓰다가 지금은 숭례문학당에서 정식으로 '감투성, 글을 쓰며 나를 만나는 시간' 강좌를 오픈해 함께 기록을 나누고 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어떤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의 매일의 기록을 통해 그 삶을 드려다 본다. 어떻게 보면 제일 내밀한 민낯일 수도 있다. 내가 그렇듯. 함께하는 분들의 글을 읽을수록 그분들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나. 아 이런 점 너무 배우고 싶다. 나도 이렇게 해 볼까' 하며 그분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문보영 작가의 말처럼 그분들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미묘하게 뒤섞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점이 발견되고, 선망하는 지점이 보인다.
2023년 9월부터 2026년이 3월, 지금까지 빼먹지 않고 꾸준히 감투성을 기록해 온 건 아니다. 중간중간 빼먹은 적도 있고, 한 때는 꽤 긴 시간 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25년 8월 중순부터는 메이트분들과 함께 쓴 덕분에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감투성 기록을 매일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보인다. 내가 어떤 것을 즐거워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그러다 보면 삶의 방향이 그려진다. 반복되는 패턴들이 보이다. 그리고 하나씩 작은 도전을 시작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 차근차근 밟아가게 된다. 감투성을 시작하고 삶이 더 선명해져 보인다.
누군가가 일기를 꼭 써야 되냐고 묻는다면, 꼭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나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는 이거 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공자님은 앎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알기 위해서는 우선 관찰을 해야 한다. '자기 사랑', '자기 돌봄'을 외치는 요즘 시대이다. 그럼 이 앞에 선행될 것은 자기 관찰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 자기 관찰을 하기 위해서 일기를 써 보는 게 어떤지 권해보고 싶다.
문보영 작가는 <일기시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나에게 에세이는 일기와 같은데, 이 둘을 분리하는 순간 주제와 의도를 갖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히곤 한다.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아무거나 쓰면 될 것 같은데, 에세이를 쓰려면 아무거나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끙끙대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에세이를 써야 할 때도 일기를 쓰자고 생각하며 공책을 편다. 그렇게 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일기가 집이라면 소설이나 시는 방이다. 일기라는 집에 살면 언제든 소설이라는 방으로, 시라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p.35)
<일기시대, 문보영> 민음사, 2021
그리고 덧붙여 이런 말도 잊지 않는다.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라고.
일기, 그 지극기 사적이고 내밀하지만 그런 만큼 나를 투명하게 담는 그릇이 되어주고 있다. 그 투명한 나를 그윽이 바랄 볼 수 있는 힘으로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