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다중 생활자가 되어있다.
오전에는 어린이집 청소부
오후에는 독서모임 운영자이자 대학생
어느 날 오후에는 독서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보통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제일 중요하고 가장 최우선이라고 여기지만 요즘 가장 밀리고 있는 엄마이자 아내인 가정 생활자로 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취미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한다.
내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복장 상태가 변한다는 것 알아차렸다. 빨래가 자꾸 늘어나 그 이유를 살피다가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어린이집에 청소부 역할로 출근할 때는 편하면서도 깔끔한 옷을 선호한다. 트레이닝 바지에 깔끔한 티셔츠. 하의는 편하게 입어도 상의는 편하면서도 너무 없어 보이지 않는 옷으로.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생활방수가 되는 앞치마를 착용한다. 청소부라는 직함의 특혜로 트레이닝 복을 입어도 괜찮지만 그래도 나름 신경 써서 옷을 입으려고 한다. 학부모님들과 왔다 갔다 만나는데 최소한의 예의로.
두 번째.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와 달리기를 하러 갈 때는 완벽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는다. 하의는 그 상태 그대로, 상의는 땀이 잘 마르는 라운드 티로 갈아입니다. 면 티는 안된다. 잘 못 입으면 겨드랑이 살이 쓸려 빨갛게 부어오른다. 이왕이면 저렴하면서도 재질이 좋은 러닝복을 사서 착용한다.
세 번째.
독서 수업이 있는 날은 나름 신경을 쓴다. 드디어 하의가 청바지 또는 면바지 등으로 바뀐다. 트레이닝 바지와 잠시 안녕이다. 상의는 카라 있는 옷이나 나름 정복 같은 느낌이 나는 옷을 입으려고 노력한다. 아직 초보인 나는 옷에서라도 전문가 느낌을 풍기려고 노력한다.
네 번째.
독서모임 운영자로 돌아와 줌 화면을 켤 때면는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 내추럴한 나의 모습 그대로 참여할 때가 많다. 편한 차림.
다섯 번째.
가정생활자가 되면 거의 막가파 수준이다. 늘어진 면티도 마다하지 않고 입고, 바지는 항상 몸빼 바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옷차림에 따라 속옷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여성분들 대충 짐작할 것 같다.
트레이닝 바지를 입을 때(청소부와 러닝 시), 은근 팬트라인이 신경 쓰인다. 바지는 편해보이만 안에 속옷은 라인이 안 보이는 심리스 속옷을 선호한다. 달리기 할 때 상의는 꼭 붙어서 출렁임을 방지해 주는 타이트한 브라를 한다. 그래야 뛸 때 방해받지 않는다.
하의를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을 때(독서수업 및 독서모임 참여 시)는 바지 두께에 따라 달라진다. 얇으면 심리스 속옷을 두꺼우면 맥시팬티(일명 아줌마 팬티). 몸빼 바지 입을 때도 역시 맥시팬티를 입는다.
여기서 말하는 맥시팬티를 한수희 작가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에세이를 읽고 알게 되었다.
"미디와 맥시를 놓고 한동안 망설이던 나는 결국 맥시팬티를 골랐다. 아무래도 맥시팬티가 더 넉넉한 디자인일 것 같다. 팬티라도 편한 걸 입자." (55쪽)
"그날 밤 샤워를 한 후 새로 산 맥시팬티를 꺼내 입었다. 깜짝 놀랐다. 몸에 딱 맞았다. 충격이었다. 딱 맞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 편했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뭐야,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거지? 이래도 되는 거야? 심지어 맥시팬티는 맵시도 대단했다. 맥시팬티는 내 아랫배에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중년의 뱃살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 이것이 바로 맥시팬티의 신세계인가." (56쪽)
"맥시팬티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렇게 어렵던 일이 이렇게 간단히 해결된다니. 기분이 좋다. 정말로 좋다." (59쪽)
그렇다. 나는 이 에세이를 읽고 바로 '맥시팬티'를 샀다. 진짜 신세계였다. 너무 편했다. 외출 시에는 종종 다른 팬티로 갈아 입어야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씻고 나면 무조건 맥시팬티를 꺼내입는다. 그제야 내가 나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역할에 따라 다른 나로 살다 맥시팬티를 입는 순간 내가 되는 느낌이다. 팬티 이야기를 쓰는 게 목적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팬티이야기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에서 작가는 다양한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은 자신의 평범한 인생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내면의 자아들을 서술한다. 평범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확대경으로 바라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인생]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평범한 삶의 흐름이 갑자기 내가 전혀 다르게, 한없이 위대하고 신비스럽게 보인다. 그건 내가 아니라 우리였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얼마나 총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인가! (223쪽)
그것이 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 그분을 인지하고 알게 된다면 하느님도 아주 평범한 생명일지 모른다. 내가 그를 나 자신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 속에서 발견하게 되리라. 어쩌면 사람들 속에서 만나게 되고, 우리 모두처럼 아주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240쪽)
나 또한 내 삶이 누구보다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 요즘의 나를 보면 문득, 결코 평범하지 않구나. 다양한 생활을 하며 다분히 즐기면서도 애쓰고 있는 날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역할로 인해 옷을 갈아입으면서 색다를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