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필사하며...
"술 마시러 갈 때 뭐가 그렇게 행복했니?''
-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p.296 -
나에게 물어본다.
"책상 아래 소주를 숨겨 놓고, 밤마다 술을 먹던 시절, 넌 어떤 마음이었니?"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기사 시험 준비를 한다고 밤을 새우면서 그렇게 소주를 혼자 홀짝홀짝 마셨다.
불안해서였을까?
그때 방을 혼자 쓴 것도 아니고 언니랑 같이 쓰고 있었다.
언니는 그런 저를 모르는 척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먼저 자서 몰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그렇게 소주 한 병, 두 병 비우는 생활을 꽤 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잠자기가 힘들었는데 술을 먹으면 깊이 잘 수 있어서 좋았기 때문이다. 졸업하면 미래가 어떻게 될 지하는 불안감과 가족에 대해 책임감이 앞서 나를 답답하게 했다.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 바쁜 엄마, 아빠.
그러다 보니 동생이 아프거나 집안 살림을 해야 할 때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자리에 있다. 동생은 어리니깐, 언니는 직장생활을 하니깐. 이런 이유도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어려서부터 사랑이 목말랐던 내가 예쁜 받기 위해서 알아서 척척 무언가를 해나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집에 급한 일이 생기면 당연히 내 차지가 되었다.
동생이 아파서 병원 가야 할 때,
동생 졸업식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할아버지 점심을 챙겨 드려야 할 때 등등...
벗어나지 못하는 속박에 굴레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밤에 방에서 몰래몰래 소주를 먹기도 하고,
창문을 넘어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먹고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술은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그 버릇 여태 못 끊고 있다.
오늘은 불금.
술 한잔 먹는 날인데,
독서 모임이 있어 내일로 미루어야겠다.
암튼, 이제야 20대 초반에 한 혼술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게 되었다.
이 책이 참 고맙네.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나를 알아주고,
위로하고,
'그래, 외로웠겠네', '불안했겠네.'
'그래도 잘 견디어왔네', '잘했어!' 하고 감싸 안아 주면 된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p.2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