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를 필사하며
스토너는 그동안 다짜고짜 자신의 경력과 학위를 밝힌 이력서를 써서 여러 곳의 종합대학과 단과 대학에 마지못해 보냈지만,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묘하게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렸을 때 집에서 느꼈어야 마땅한 안정감과 온기를 컬럼비아의 미주리 대학에서 느꼈으며, 다른 곳에서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슬론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p.56 -
집을 떠나 처음 컬럼비아 비주리 대학에 입학한 스토너. 그 이후 죽을 때까지 미주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교수직으로 일을 한다. 집보다 대학에서 안정감과 온기를 느낀 스토너. 이 문장을 보면서 나는 어디에서 안정감과 온기를 느끼나 생각해 봄과 동시에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멈춰 서게 된다.
<작문연습 & 에세이 쓰기>
홍은 그동안 다짜고짜 자신의 학위와 아르바이트 경력을 밝힌 이력서를 써서 서울의 여러 곳의 지반조사 업체 및 토목 업체에 기대를 품고 보냈지만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무 살이 넘은 나이까지 집을 떠나 독립하기만을 꿈꾸고 있었으며, 집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집을 더나 혼자의 공간에서 오롯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졸업 직전에 서울에 소규모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무턱대고 설렘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무 연고 없는 서울 살이는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았고,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릴 뿐이었다. 수습 기간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서는 쥐꼬리만큼의 월급(70만 원)을 주었을 뿐이었고, 자취방은 툭하면 보일러 고장으로 냉골인 집에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새벽이슬을 맞으면 집에 돌아와도 아침 9시까지 출근해야 되는 나날을 보내다 수습 3개월이 끝나고 연봉협상을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연봉이 남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부르는 사장 앞에서 부당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 하고 나왔다. 부당하다는 말을 못했지만 행동으로 실행에 옮겼다.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습 3개월이 끝나는 동시에 퇴사하고 나왔다.
서울에 취직한 딸을 위해 전세금을 마련해 옥탑방에 방을 힘들게 구해준 부모님의 얼굴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낙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 두 달 뒤에, 그러니깐 돈이 다 떨어질 때쯤 부모님에게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 제천에서 취직 준비를 다시 해보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집을 떠나기 전에는 집만 떠나면 훨훨 날아다니며 살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집 떠난 현실은 설렘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나를 진짜로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만을 남겨줄 뿐이었다. 내 한 몸 책임지고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체감으로 알기 시작했다. 돌아갈 곳은 내가 살았던 가족의 품이 아니라 싸늘하게 식어있는 자취방이었다.
다시 또 다짜고짜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학연으로 겨우겨우 서울에 재취직을 해서 처음보다 더 나은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남녀 차별 없이 연봉 주는 곳, 수당에 대한 지급이 있는 곳, 수습이 없는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처음 입사해서 3개월 다닌 회사가 사회가 어떤 곳인지, 나를 책임지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해 줄 수 있었기에 그다음 회사에서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첫 회사에서의 3개월이 결코 헛되지않았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서 4년 동안 배운 일로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다.
물론 아이를 낳고, 전공과 다른 일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그때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고민한다. '이 일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가?'라는 말 앞에 단지 다른 일보다 이 일이 익숙해서 안정감을 주는 것뿐이라는 말을 뱉고 싶다. 스토너처럼 일을 사랑하지 못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일이 싫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매일든다. 이런 마음으로 일을 해나가니 가끔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버둥거리면서 이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해본다. 단지 먹고 사는 일, 나에 대한 책임,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일까? 어쩌면 지금 내가 당장 이거 말고는 다른 무언가 할 수 없기에, 한다고 해도 이만큼의 능률을 낼 수 없기에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무언가에 발을 들인다는 건 늘 두려움과 용기를 동반하는 것 같다. 생계가 먼저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먼저가 맞겠냐고 질문도 해 본다. 매번 눈앞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해 조금 더 먼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매번 당장만 살아가는 나의 태도가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며칠 전 우리 둘째가 드리마 [그해 우리는]을 보고 있었다. 웅이와 연수. 웅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서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성공의 의미와 가까운 삶을 사는 웅이. 반면 연수는 기를 쓰고 살았다. 생계를 위해 살아간다. 연수 또한 멋진 자리에 있다. 그러나 웅이와 연수를 비교해 본다면, 꿈을 꾸며 그것을 따라가 살아온 웅이는 사회적으로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웅이는 그럴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연수 또한 자신의 환경에서 그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당장의 빚을 갚아나가야 하기에 꿈만 꾸고 그것만 쫓아갈 수는 없는 환경이었으니깐.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상황이지? 아이 둘을 양육하고, 집 융자금이 집값의 2/3를 갚아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남편도 같이 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 교육비와 융자금만 갚아나가기에도 조금은 힘든 상황이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가는 시간에 있다. 이 상황에서 나는 꿈을 좇아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경제활동을 하면서 꿈을 조금씩 계속 꾸준히 놓지 않고 나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늘 아직은 아니라고 여기며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도 회사에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자꾸 내 마음을 누른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게 먼저이니깐. 아이들 또한 내 꿈인 걸까? 아이들이 잘살아가길 바란다. 그런 마음에 나보다 아이가 더 소중했기에 아이를 배는 순간부터 나의 삶을 자꾸 아이에게 양보했다. 지금 또한 양보하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지만 이제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다. 내가 아무 쓸모없는, 무용한 사람 같다고 여기며 내가 나를 힘들게 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남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진심으로 무슨 소리냐며 지금까지 충분히 잘했고, 앞으로 천천히 새로운 일을 모색하면 된다고 말해 줄 거면서 나 자신에게는 야박한 소리가 먼저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일과 휴직을 반복했던 삶. 그리고 나보다는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살았던 삶. 그러니 이제는 충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살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서도 자꾸 남편이 눈에 밟힌다. 저 사람이라고 꿈이 없을까. 저 사람이라고 일이 안 힘들까.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 나는 결정을 못 하고 갈팡질팡한 삶 앞에 놓여있다.
이번 주 스토너를 읽으면서 그의 단조로운 삶이, 한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하며 살았던 그의 삶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마저 단조롭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단조롭지만, 삶에서 느끼는 복잡 다나한 감정들, 때론 무능력하기도 때론 무심하며 때론 회피하는 그 자신을 볼 때, 내 모습이 보여 더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다음 주 필사는 나를 어떤 시간으로 데려갈지 궁금한다.
쓰담쓰다 필사 17기 1주차 에세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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