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담홍 Aug 01. 2024

경험과 생각의 어울어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문장을 통해...

정말로, 우리는 심오한 사상가이며, 야심 찬 영혼이다! 나는 숲속에 서서 바닥 솔잎들 사이를 기어가는 벌레를 내려다보았다. 그 벌레는 나에게서 몸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왜 저 벌레는 사소한 자기 생각을 소중히 여기면서 나에게서 머리를 감추는 것인가? 내가 벌레의 은인이 될 수도 있고 종족에게 좋은 정보를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인간 벌레에 지나지 않는 내 위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더 위대한 은인과 지성에 생각이 미쳤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왜 저 벌레는 사소한 자기 생각을 소중히 여기면서 나에게서 머리를 감추는 것인가?' 이 대목에서 멈추게 된다. 나는 내 프레임에 갇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흘러가 버린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제 우리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어제 성수동에 스키즈 팝업스토어가 열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왔다. 오후 4시 입장이었는데 우리는 3시 15분에 도착했다. 대기 줄에 첫 번째로 줄을 섰다. 대기 줄에서 고개를 조금만 내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팝업 스토어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땡볕에 땀을 흠뻑 흘리며 서 있는 아이들이 힘들어 보였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앞에 서서 한 번 보라고 권했다. 시원한 바람도 맞을 수 있었기에. 그러나 우리 딸들은 그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면서 끝까지 거부했다.



지하철을 타고 오갔는데, 지하철에 교통카드를 찍고는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oo야, 밀어야지."

"응?"

아이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회전문을 손으로 밀어주고야 아이는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지금껏 아이들은 자동문에 익숙해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었으며 엄마 아빠가 해주는 것에 길들어 있었다.



화요일 휴게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휴게소에서 우리 넷은 우거지 해장국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남편과 나는 수저를 챙기고 해장국 4개를 자리로 날랐다.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어떤 남자분이 "숟가락까지 다 챙겨줘야 애들이 밥을 먹는구먼."하고 눈을 흘기며 우리를 보셨다. 그 말이 불편하긴 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지금껏 우리는 이걸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퇴식구에 식판을 갖다 놓으려는데, 아이들을 "이건 우리가 갖다 놓을게." 하면서 자기들의 식판을 가지고 따라왔다.



어쩜 자기 생각의 매몰 되거나 확장하지 못하는 건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경험과 생각이 어우러질 때 우리의 보는 시야는 더 넓어지고,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워질 터이다.



나뿐 아니라 아이들도 경험과 생각이 쌓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자. 이 또한 다 해주려는 행동은 금물이다. 스스로 하는 방법을 잘 찾아가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에게 받은 다정함과 아이에게 물려줄 다정함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