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녀는 늘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 "봄이요."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봄을 진짜 좋아하나?' 습관처럼 하는 답변에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봄을 좋아했던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달이기에, 대지에 돋아나는 연초록의 싹이, 꽃이 움트는 모습이 감격스러워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봄이 그녀에게 아프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범하다며 평범하게 살아온 삶이었다. 평범하게 살던 어느 봄날 그녀에게 큰 사건이 생겼고, 그 사건으로 인해 봄 몸살이 시작됐다. 처음엔 기억하려 애쓰며 잊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픔도 후회도 희미해져 갔다. 마음은 저 멀리 가버렸는데도 몸은 그러질 못하는지, 봄만되면 그녀는 낑낑거렸다. 몸에서 오는 낑낑으로 마음 깊은 곳의 무거움을 꺼내보곤 한다. 그런 봄을 그녀는 더 이상 좋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봄을 어떻게 놔주어야 할까. 이건 그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같은 것이다.
대신 그녀는 여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름은 늘 더워 힘들다고만 여겼던 그녀다. 그런데 요 몇 해부터는 여름이면 좋은 추억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여름엔 방학과 휴가가 있고, 여행이 있다. 특히, 친정 부모님과의 여행이 그녀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었다. 어려서 늘 외롭고, 사랑이 고팠던 그녀는 친정 부모님과 다니는 여행에서 유년기에 받지 못하는 사랑을 받는 듯했고,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가 애정이 없어서가 아닌 삶의 고단함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과 마음으로까지 흡수시키는 시간이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그녀는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왔다. 매번 그녀의 아빠가 운전해서 여행지로 직접 오곤 했는데, 올해는 언니네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지로 왔다. 그만큼 부모님의 나이 듦을 한 해 한 해 육안으로 확인해 가고 있다. 그녀는 마음이 아려오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부모님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의 엄마는 여행 후 허리 통증으로 힘들었나 보다. "이제 여행 못 다니겠어." 하며 앓는 소리를 하신다. 그녀는 엄마가 여행 뒤에 항상 크게 아프면서도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가자고 먼저 나서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녀의 엄마는 이번에도 치료 잘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오기 전에 누구보다도 먼저 말할 것이다. "우리 여행 어디로 갈까? 언제 갈까?" 그녀는 엄마의 귀여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녀는 이제 엄마의 푸념이 더는 짜증 나거나 힘겹지 않다. 그저 엄마의 말을 들어주고, 엄마에게 건강을 잘 챙기라는 말만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에게 엄마 덕분에 여행 잘 다녀왔다고, 즐거웠다는 말만을 남긴다.
그녀는 부모님과의 함께할 내년 여름 여행이 벌써 기다려진다. 다음 번 여름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