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쓰다2기 day3
그녀는 어딘가 도망치고 싶을 때면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에서 나는 잉크의 진한 냄새와 종이에서 나는 눅눅한 향이 그녀에게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만화책을 좋아하는 친구와 열린글방(책 대여점)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녀는 만화책보다 하이틴 소설이 재미있었고, 하이틴 소설에 폭 빠져 사느라 잠을 거르고 학교를 향한 적도 많았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열심히 공부하는 줄로만 알았다. 실상은 연애 소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열린 글방에서 매일 책을 빌려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용돈이었다. 어떻게 해야 책을 저렴하게 볼 수 있을지 그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집에서 10분 떨어진 시립도서관이었다. 신설된지 얼마 되지 않아 쾌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처음 시립도서관에 갔을 때는 못내 아쉬웠다. 그녀가 좋아하는 하이틴 소설도 없었고, 신간 도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책 보는 맛을 봤는데. 그녀는 책 속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주말에 별일 없으면 터벅터벅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한참 친구가 좋은 시절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혼자만의 아지트 같은 시립도서관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게 오히려 답답하고 싫었다. 도서관에 칸막이가 있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다가 잠시 엎드려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어슬렁거리며 열람실로 향했다. 오늘은 어느 책을 꺼내볼까 하면서 책을 손가락으로 쓱 문지를 때면 그렇게 행복하고 좋을 수 없었다. 이 책 저 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볼 수 있는 것에서 그녀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이것만큼은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라 여겨졌다. 누구의 강요도 없는 자신만의 자유의지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김진명 작가, 이외수 작가를 만나고, 신경숙 작가와 양귀자 작가, 은희경 작가를 마주했다. 우연히 마주친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 소설 [향수]를 만났을 때의 전율을 그녀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향수]를 읽는데 옆에서 냄새가 진짜 풍기는 것 같았고, 잔혹한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져 오한을 느끼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 당시 그녀는 어떤 책이 유명한 책이고 좋은 책인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책을 읽는 게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빌려보는 책들은 반납할 때는 늘 아쉬워 좋은 문장은 노트 한켠에 적어놓곤 했다. 짧은 감상을 적어놓기도 했다. 그녀는 문득 그 노트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 본다.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걸 아쉬워해 본다.
그녀는 대학생 때도 책에 대한 애정은 계속되었나 보다. 술 먹고 노는 사이에도 다이어리 한켠에는 '책 읽자! 한 달에 2권 이상'이라고 적어 놓은 거 보면. 그녀의 20대에는 어떤 책이 있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그녀는 잠시 책을 잊고 살아야 했다. 예고된 독립이었음에도 그녀는 새로움과 동시에 밀려오는 낯섦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그때야 비로소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을 경제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무게를 알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덧 결혼을 하고 육아가 시작되었다. 녹록지 않은 생활에 그녀는 무너져 내려갔다. 그녀는 자신을 잃은 듯했고, 앞으로의 삶이 깜깜한 터널 같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때 시립 도서관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을 30대 중반에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10대 시절과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손끝으로 책의 감촉을 느끼며 아무 책이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보고 덮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점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는 지금 책 보는 일을 조금 더 깊게 하고자 한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필사를 하고, 필사를 마중물 삼아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취미로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그녀에게는 꿈으로 자리 잡았다.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도왔던 기억을 되살려 누군가에도 그런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주고 싶은 것이다. 꼭 책이 아니어도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우리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돈 만원으로 지금은 부족하지만 돈 이 만원으로 책 한 권을 살 수 있고 만원 짜리 두 장으로 삶에 생기가 돌 수 있다면 가성비가 얼마나 좋은가.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돈을 쓰며 경험해 보지 않아도 된다. 책 속에 이야기를 통해 나와 다른 삶 또는 나와 비슷한 삶을 바라보며 인간의 군상을 볼 수 있으니깐. 그녀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그녀를 단단하게 해 줬다 믿는다. 그 고맙고 감사한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길 그녀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