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마음사전>을 읽으며...
<김소연의 <마음사전> / 57-58쪽>
어느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중략)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다.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려는 의욕이 있는 한,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각자의 믿음만이 고개를 내민다. 각자의 자기 역할에 대한 믿음을 서로의 존재에 대한 신뢰라고 착각하면서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이고 만다.
최근에 내가 느낀 감정이 이거였다. "소중하다" 남편은 자신의 의무와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있으나 나에 대한 소중함이 덜해졌다. 내가 이제야 여유가 생겨 남편을 돌아보는 걸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건지도 이제 좀 알았으니깐. 그동안은 남편이 나를 소중하게 여긴 건 분명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점차 보이지 않는 선들이 그어졌다. 남편이 집 안일을 더 열심히 도와주지만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할까. 이런 감정을 기분을 느낌을 표현하는 데 애를 먹었었다.
그저 투정 부리는 어린애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차피 그렇게 보일 거라면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싶었다. 철저히 자존심을 버렸다.
일차 시도는 "나 사랑받고 싶어, 사랑해 줘"라고 외쳤고
두 번째는 내가 하는 말에 남편이 늘 별 반응이 없어 무안했다. 나도 같이 입을 닫았다. 내가 입을 닫아도 여전히 불편해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나란 존재는 정말 이 사람에게 별로 인식되지 않구나를 느껴 서글펐다. 그리고 자신이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티키타가도 전혀 안되고, 궁금해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무안해하는 것 또한 모르는. 이런 사람이었나? 섬세한 사람이라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던 내 남편은 멀리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세 번째 시도는 무언가같이 해 보려고 했다. 같이는 하지만 마음은 저 멀리 허공에 가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함께 무언가 안 하는 게 더 나은, 상처만이 있을 뿐이었다.
남편이랑 요가를 같이 다니고 있다. 매주 금요일 하루지만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시작한 것이라고 여겨 엄청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골프를 더 잘 치고 싶어서였다. 이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이유가 두 가지다 일 수 있지만 아무리 봐도 골프가 더 우선인 것 같다.
결국 나는 화를 냈다. 지금까지 내가 애썼던 상황들을 설명하고, 예전과 달라진 것들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느낌이라고 말로는 표현을 못 하겠어! 어쨌든 건 나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나를 사랑하는 것 않는 것 같지 다고!"라 외쳤다. 눈물은 뭐 곁다리였을 뿐. 그리고 최후의 한 마디를 남겼다. "사랑받고 싶어, 인정받고 싶어."
이런 시간을 거치는 동안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집에만 있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관심이 집중돼서 그런 걸까, 사람을 만나러 다녀야 하나, 모든 것을 내 문제라고 여겼다. 남편에게 무슨 계기가 있었냐고 물었지만 모르쇠. 내가 이렇게 말한 뒤로 남편이 애정을 담으로 노력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척이다. 나는 왜 이렇게 민감한지. 어쩌면 결혼생활의 변화일 수도 있다. 나이가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반응이겠지 하면서도 서운한 건 서운한다. 매일 같이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저 멀리 가있으니 허전하다. 그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시 이 상황에 적응하는 것일까?
*글을 쓰다 말고 소중한 우리 딸들이 간식 먹고 싶다고 해서 어묵탕을 맛있게 끓여주고 왔다. 글 쓰는 일 보다 우리 딸들이 더 소중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