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를 보낼 수 없는 이유

이주의 비의

by 은진송

서울에서 을왕리로 향하는 길에 휴게소가 하나 있다. 언젠가 거기에 잠깐 들렀었다. 을왕리는 처음이고 그 휴게소도 처음이라 무엇이든 신이 나서 차에서 내렸던 것 같다. 아주 작은 휴게소였는데 사람들이 유독 한 곳을 향해 가길래 따라 가보니 전망대 비슷한 곳이 나왔다. 엄청 높은 그런 곳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사진동호회인지 동아리인지처럼 보이는 사진 장인들이 와서 대포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해둔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일몰을 촬영하려는 것 같았다.


그 옆에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느린 편지? 소문은 들었지만 실체를 본 적이 없어 실존의 의구심을 품었던 그 우체통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때는 그 휴게소 한 곳에만 있는 줄 알고 신기했었다. 나중에 검색해보고 나서야 전국 곳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 여기 다시 올지 모르는데 이런 이벤트를 그냥 무시해? 무료래! 라며 동행들을 부추겼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느린 우체통에 느린 편지를 넣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같이 편지를 써넣을 연인과 언제 헤어질지 몰라서? 아니면 이런 이벤트는 다 괜한 모험이라 생각하고 귀찮아하는 성격들이라서? 아니다. 편지가 1년 후에 배달되기 때문이다.


느린 우체통이니 당연하지 않냐고? 물론 당연하다. 1년 후에 도착하는 편지라는 점이 느린 우체통의 존재 의의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1년'이라는 예측 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편지를 던져 넣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1년 뒤에 살 곳을, 그러니까 주소지로 적어 넣을 곳을,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혹은 2년마다 임대차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그나마 월세가 적은 곳으로 이사를 하거나 돈을 모아 없는 전세를 기어코 찾아놨더니 알고 보니 반전세라거나 이 정도 조건이면 대출을 해서 이자를 내자고 결심하거나 SH나 LH를 들락날락 거리는 일들이 향후 1, 2년 사이에 예정되어 있다.


그냥 한 10초 정도 씁쓸함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1년이 지나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나의 집이라는 게 생기기는 할까? 어딘가에 정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었음을 눈치채는 데는 10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렇게도 옮겨 다녔다. 경북에서 충북으로 충북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태평양의 섬으로 섬에서 서울로. 죄다 집이라기보다 방이라고 할 만한 곳에서 살았다. 기숙사에 여럿이서 같이 살기도 하고 혼자 살기도 했다. 매우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리고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내 삶의 자연스러운 일면이 기이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주와 이사를 거듭하는 삶도 나름 가치 있었고,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지금의 삶도 가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전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놈의 '내 집 마련'이 왜 그렇게 대수로운 일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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