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 고찰

by 은진송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난스러운 시험인 수학능력시험 이후에도 수많은 시험이 나를 스쳐갔지만 지금처럼 예민하던 적도 없다. 아마 토플 시험을 볼 때도 이보다는 덜 예민했을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민해져 간다.


형광등 불빛때문에 담요로 침대 커튼을 만들고, 룸메이트의 잠버릇때문에 잠을 설치는 고등학교 기숙사의 예민함 속에서도 나는 쿨쿨 잤다. 심지어 "'그' 방에 '그' 침대에서 가위가 그렇게 잘 눌린다더라"의 '그'곳에서 잤는데도 가위는 커녕 꿀잠자던 사람이었다.


예민해졌다는 것. 다시 말해 집 안의 공기와 자극을 감각하고 감지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달라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학생 땐 머리 뉘여 잠 잘 곳이 집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좀 더 농밀한 의미가 생긴 듯 하다.


세상의 모든 곳에서 모든 종류의 간섭이 이루어진다. 자극과 자극의 충돌로서의 간섭부터 내 행동을 교화하려는 간섭까지, 여러가지 간섭으로 둘러 싸인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이 존재하는 곳은 없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온전한 나'를 보장해주는 공간은 집 뿐이라는 믿음이 생겨나 버린 것 같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내던져지면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과 맞서야 했다. 그렇게 밖에서 너덜너덜해지고 집이라는 곳에 들어오면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아서 아무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좋았고, 그건 오직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간섭이 사라져서 예민해진걸까? 예민함은 혹시, 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잡음을 이겨내는 훈련을 받으며 평생을 살던 사람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잠잠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때 생기는 부작용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은 나면서부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혼자 있음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도 필요에 의한 필연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좀 덜 예민한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우린 함께 해야 한다.





해당 브런치북(과 글들은) 수정을 거쳐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로 독립출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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