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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엣지정 Aug 30. 2024

너도 3루에서 태어났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서대문구에 있는 모 대학 앞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르르 학교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가 한마디 한다.

방학이에요. 더구나 이렇게 이른 시간인데.... 들은 확실히 다르네요.

그녀는 서울 외곽에 있는 전문대학 시간강사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제가 강의 나가는 학교는 방학이 아니라 평일에도 도서관이 텅텅 비어있거든요. 저들은 좋은 대학에 다닐 자격이 충분하고 앞으로 성공가도를 달릴 거예요.

 그 말은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자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으며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듯 들렸다. 열심히 사는 청년들에 대한 칭찬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재수할 때 일타강사가 했던 말인데, 명문대 앞에 있는 80% 이상이 그 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선생님 학교 학생들은 알바 가야 하나 보죠. 아니면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엉뚱한 생각을 했으니 당연히 엉뚱한 말이 나왔다. 그녀도 예상치 않은 내 반응에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건 당연하다. 학기 중이나 방학이나 공부를 하러 가든 친구를 만나러 가든 놀러 가든 다른 일이 있어 가든 학교는 학생들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아주 당연한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왜 집단 분별심이 생겼을까?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곳에 다니는 그들의 현재가 온전히 자신들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성취된 것일까? 우연히 3루에서 태어나 그 덕분에 고득점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고 탄탄대로를 걷기 위해 목표를 우고 비싼 학비 걱정은 없이 공부에만 몰입하는지도 모른다. 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들이 사는 대로 살면서 세상이 제시하는 조건을 좇으며 남의 눈치 보느라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없는 환경에서 흉내내기라도 해야 하고 자본주의 틈바구니에서 견뎌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 으르고 의지가 박약서 그리 된 것일까?

 개인적 자질과 가정환경은 아주 우연히, 그리고 너무도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조건인 것이다. 이미 부여받은 조건이 불평등한데 무엇으로 그들의 삶을, 삶의 방식을 판단하는가 말이다. 정작 그녀도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지 않았더라면 학력을 더 쌓을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테고 전문대학 시간강사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볼 때 그녀는 꽤나 품위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받는 대접이 빈약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명문대학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낼 수 없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개개인의 능력이라는 건 생각보다 명백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일은 꽤나 비일비재한 현상이다.


 그녀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정의나 전쟁을 보는 시각이 같고 같은 음악을 좋아하며 일상의 삶에서 무엇이 좋고 나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려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게 맞지도 않는 돈벌이를 제안하거나 소비에 대한 즐거움에 취해 있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 늘 웃는 얼굴이면 좋겠고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지고 어려워져도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세상을 연재만화 보듯 하는 친구와 함께 하길 바란다. 내 주변에는 3루에서 태어난 친구가 많지만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느낀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 1989년 김영사, 로버트풀검(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P69 <세상을 연재만화 보듯이> 일부 각색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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