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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돈을 제약조건에서 빼도 괜찮은가?

돈이 많아도 쓸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

예전에 꿈버클럽에 이런 메시지를 올린 적이 있다.


만약 세후 2억씩 매달 벌게 된다면 어떻게 쓰겠습니까?’


다들 기분이 엄청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분은 그만큼 벌려면 얼마나 일을 해야 할지 떠올리게 되어 힘들어 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명확히 드러낸 사람은 없었다.

남편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보았다. 우리 남편은 우선 집을 산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집을 샀는데도 2억씩 계속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았다. 자기는 그냥 회사에 다닐 거라고 했다. 딱히 회사를 그만두고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서도 계속 회사에 다니겠다는 거야?라고 물으니, ‘그럼 회사를 살까?’라고 말한다. ‘회사를 사면?’’그러면 회사에 다녀야지.’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졌다. 나도 2억씩이나 매달 쓸 자신이 없었다. 돈 쓰러 다니는 것도 좀 귀찮을 것 같았다. 그리곤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정말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일까?
돈이 없어서 뭘 못하고 있는 거 맞나?”


우리는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많이 생겨도 못쓰고 불행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이만하면 잘 살아가고 있어서, 돈이 많이 생긴다고 해서 이 삶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이 삶이 이만하면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전에 가족 갈등에 관한 강의를 나간 적이 있다.


“여러분, 가족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그랬더니 주저없이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쥐고선, ‘이것이 없어서죠.’라고 대답했다. 거기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죠. 돈이 없어서, 돈 문제로 많이 싸우시죠. 그런데 만약 갑자기 10억이 집에 떨어졌어요. 가족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이렇게 물으니 다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돈이 아무리 있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돈이 없는 지금이라도 갈등관리 능력이 있으면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물론 돈이 조금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서 스트레스가 감소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이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돈이 아무리 있으면 뭐하나. 그것으로 뭐할지를 모르면 돈은 그냥 휴지조각이다. 돈을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는 것이다. 그것을 쟁여놓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겨넣을 집이 넓어야 하니까 집을 구매하겠지. 차도 한 대씩 사고. 나머지 돈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할 것이고. 그것이 나의 삶을 그렇게 많이 바꿔놓을 수 있을까.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 줄까. 


항상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항상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에 남아있다. 연구비를 충분하게 쓰면서 여유롭게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돈이 많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논문을 쓸텐데…. 그러다가 진짜 거금이 생긴 일이 있었다. 시간강사지원 사업에 제안을 했는데 채택이 되어서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열악한 학문후속세대의 처우를 개선해주자는 복지성 재정지원이라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가 않았다. 무려 천 이백만원을 현금으로 넣어주었다. 물론 기간 별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넣어주었고 성과도 내야 했지만, 정부 돈치고 까다로운 행정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지원금이라 연구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았다. 


현금 천 이백만원. 이것으로 뭘할 수 있을까. 일억 이천만원도 아니고, 천 이백만원이 생겼는데, 갑자기 이 정도의 목돈이 생기니까  뭘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때서야 그동안 연구비가 충분했으면 좋겠다고 바래만 봤지, 실제로 충분한 연구비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우선 그 돈으로 한 것은 노트북을 산 것이었다. 그것도 하이마트에 가서 전시상품으로 샀다. 천 이백만원이 있는데 왜 전시상품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백만원이 안 되게 노트북을 지르고 나니, 천 백만원이 남았다. 그것으로 또 뭘할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그냥 통장에 넣어 두었었다. 그 뒤로 책도 사고, 교육 들으러 가고, 워크숍 진행비, 논문 게재비 등으로 쏠쏠하게 쓰긴 했다. 그런데 이 돈을 지출하는 데 무려 몇 년이 걸렸다. 문제는 역시나 충분한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특별히 ‘고퀄리티’의 논문을 써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인가? 2억까지도 아니고, 정말로 나같이 천이백만원이 있고, 그것을 모두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머리 속에 탁탁탁 떠오르는가?  


지금은 다 사라져버린 천 이백만원. 여영부영 이렇게 저렇게 써버린 돈이 다시 생긴다면, 나는 또 이걸 어떻게 사용할까? 


이제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나는 이 돈을 모두 나의 시간을 사는데 사용할 것이다. 연구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다른 학과의 공부는 재료비나 기기 등이 있어야 해서 절대적인 돈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나머지는 사람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거기에서 얻은 통찰을 나의 시각으로 적어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줄 것이다. 


그냥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돈은 중요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사실 시간강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시간강사지원 사업비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연구 자체를 중단했을지도 모른다. 돈을 받았으니 결과를 내야 해서 나는 억지로라도 연구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원된 돈을 조금씩 쓰면서 천천히라도 무엇을 할 수가 있었다. 생활비에서 쪼개서 연구에 써야했다면 가족에게 엄청난 미안함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니 돈이 완전히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잘 쓸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다. 엄한 데 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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