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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돈은 자본의 일부일 뿐

자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대학 입학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그동안 답답했던 수험생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정말 짜릿했다. 게다가 좁게만 느껴졌던 시골 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어서 정말 설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에 들어와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영화나 연극에서 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이슈에까지 다방면의 주제를 자유롭게 말하는 광경을 보고는 조금 위축되기도 했다. 내가 언론정보학과에 들어갔기 때문에 더 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수업 시간에는 피에르 브르디외라는 기상천외한 이름을 가진 학자의 ‘문화자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자본까지는 사회 시간에 교과서로 배웠다. ‘3대 생산 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으로 외웠다. 자본은 돈을 의미했다. 그런데 문화자본은 무언가. 


우리 집에는 돈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문화자본도 거의 축적되지 못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부모님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서 떼부자가 되었어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 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생활방식을 선택할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부터 결심했다. 금전 자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자본을 많이 쌓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주변 선배나 친구들과 대화는 통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때부터 영화랑 책을 엄청 보고, 미술관도 다니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학교에서 하는 행사들은 모두 쫓아 다녔던 것 같다. 우연히도 문화생활을 공짜로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겼다. 아마도 그런 것을 추구하며 좇아다니니까 그런 기회가 열렸던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더 많은 문화 자본을 쌓을 수 있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어려운 책’을 읽고, 영어로 된 원서를 읽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지어 주었다. 남보다 뛰어나다는 기분에 우쭐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전까지 하지 못했던 깊이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참으로 매료되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해외에 자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말레이시아, 북유럽, 미국 등 비행기 타고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해 졌고, 여러 문화권 속에 놓여 있어도 쫄지(?) 않는 그런 배포도 생겼다. 


이런 경험은 삶을 더 풍부하게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액수의 금전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보내는 문화 경험이 더 삶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경험을 하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한다. 지금은 몸이 메어 있기 때문에 문화생활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 대신 가족이랑 여행을 자주 떠나는 편이다. 한 해에 한 번씩은 외국에 나가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사회 자본이라는 것도 있었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필요한 자원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관계를 잘 맺고 좋은 사람들 속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이다. 

또 보니까 긍정심리자본이라는 것도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잘 산다는 것이다. 낙관적이고,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자신이 뭘하든 잘 할 것이라고 믿으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일어나는 심리적 특성도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많은 요소가 다 자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절대적인 액수의 금전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꽤 괜찮은 부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안정적이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생활 방식, 그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 능력,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구매할 수 있는 여유, 하루 종일 아이와 뒹굴거릴 수 있는 시간, 글과 이미지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창작력,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시야, 지식을 창출하고 유통할 수 있는 수단… 이 모든 것의 총합이 내가 가진 자본이다. 단순히 통장에 찍힌 액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정말 가진 자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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