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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잔 Jul 12. 2021

어떤 엔딩에 대하여,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제가 이번 주에 본 콘텐츠 중에 가장 많이 곱씹은 작품을 고르자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일 거예요. 대극장 공연만 보러 다니는 저에게 친구가 추천해준 대학로 뮤지컬인데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에 나오는 뮤지컬 배우들이 거쳐 간 유명 작품이기도 합니다. (채송화 교수님과 도재학 선생님의 감미로운 듀엣을 들어 보세요!) 


주인공 올리버. 이미지 출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레스콜

                  

작품은 감미로운 재즈 사운드 속에서 활기차게 하루를 여는 주인공 올리버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는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헬퍼봇’입니다. 비록 지금은 주인을 잃고 헬퍼봇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지만, 그의 일상은 평화로워요. 화분에 인사하고, 창문 열고, 날씨 확인하고, 우편배달부에게 재즈 월간지와 교체용 부품을 전달받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정에 없던 손님이 올리버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주인공은 올리버의 맞은편에 사는 또 다른 헬퍼봇 클레어. 클레어의 등장으로 올리버가 오랫동안 이어온 평화롭고 외로운 일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올리버와 클레어. 이미지 출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Live (https://www.youtube.com/watch?v=roL36Cm2QuY)

                 

두 로봇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언뜻 SF처럼 보이지만, 이 극은 여러 부분에서 매우 인간적입니다. 제작자는 일부러 극의 시간적 배경을 멀지 않은 미래의 서울로 설정했다고 해요. 올리버에게 90년대 재즈 LP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무대 위에 설치된 공간에서는 재즈 사운드가 피아노와 현악 4중주로 라이브 연주되며 극장을 가득 채웁니다. 그 속에서 두 주인공은 서서히 사랑에 눈뜨기 시작해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요!)


많은 작품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이 작품은 사랑의 처음과 끝을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었어요. 두 로봇이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 그들이 꺄르르 터뜨리는 웃음은 새로운 감정을 배우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아요. 잦은 고장으로 소멸이 가까워지자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사랑이 연상되고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두 로봇들의 여정을 함께하다보면, 어느새 저도 그들과 감정이 동화돼서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되더라고요.


이미지 출처: M2 Live(https://www.youtube.com/watch?v=Zropm42HNPU)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더 이상 부품조차 생산되지 않는 헬퍼봇들은 그들의 엔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끝이 항상 슬픈 건 아닙니다. 서로의 눈빛과 미소, 먼 곳을 볼 때의 옆얼굴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엔딩은 어쩌면 해피엔딩일 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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