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새벽에 눈을 뜨고 있다. 화면에 한 명, 두 명 새로운 네모난 창이 나타날 때마다 반갑다. 까만 바탕화면에 각자의 닉네임이 보인다.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함께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열심히 쓰고 읽는다. 여자들은 공감대가 형성되면 엄청나게 결집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는 이들이 오직 글을 쓰기 위해 새벽에 만나고 있다. 서로에 기대어 더디고 좁은 폭이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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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임신을 했다. 회사가 엄청 바쁜 시기였고 출장도 여러 번 다녔다. 그러다 유산을 했다. 며칠휴가를 낸다고 하자 유별난 사람 취급을 하였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여자 상사가 도끼눈을 뜨며 의아해했다. 하긴 신혼여행을 간다고 그 며칠을 월급에서 빼려고 했던 사람이니깐. 그 당시 결혼을 한 여자 직원은 나밖에 없었다. 여자 직원이 절반 이상이었는데 어떻게 복지가 그 정도밖에 안되었는지 의문이다. 결혼을 하고 내가 받는 부당한 대우에 여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달아 두 번의 유산을 하고 결국엔 사직서를 냈다. 곧 결혼을 앞둔 가장 친했던 동료 직원이 같은 날 사직서를 냈다. 그냥 그렇게 결혼을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경단녀가 되었다. 부당한 대우를 했던 여자 상사를 고발하고 싶다. 노동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그때 무참히 당하기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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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위해 읽고 썼다. 한글이 창제되고 선포되기까지 양반들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던가. 한자는 익히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날이면 날마다 공부만 하는 양반이 아니면 글자를 배우고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지배층만이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지금도 별 반 다르지 않다. 한글을 읽고 쓸 줄은 알지만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글들이 많다. 문해력이 중요하다며 여기저기서 난리다. 누군가 해석해 주고 알려주지 않으면 글의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가짜와 진짜를 판별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당하고 만다.
읽으려던 이유는 지식을 쌓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제대로 알고 싶다.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안 것을 기록만 했다. 지금의 쓰기는 내가 뭘 알고 느꼈는지 작가의 의도가 뭔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며 책에 더 집착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읽었는데 내 맘대로 읽은 것 같다. 집에 고여있었더니 생각도 고였다. 작은 도랑이라도 좋으니 흐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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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모이는 이유는 다 다를지라도 흐르는 물에 배를 띄우고 함께 나아가고 있다. 글을 쓰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밖으로 표현한다.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새벽 시간이 소중하다. 지금은 한 귀퉁이에 타고만 있지만 언젠가 튼튼한 노를 들고 힘차게 젓고 싶다. 함께 하는 이들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