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못하면 걱정할 것도 없다.
어른을 동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생으로만 있고 싶지 않았다. 시험 공부하는 게 싫었으니깐. 중학교까지 곧잘 나왔던 성적은 고등학교에서 곤두박질쳤다. 뻔한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중학교 때 잘하던 아이가 고등학교 가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더라에 주인공이 나다. 중학교 시험은 이해를 하지 않고도 점수가 잘 나왔다. 중학교보다 어렵고 범위도 넓은 고등학교 시험은 외워서 될 게 아니었다. 학원에서 알려준 데로만 시험을 치렀던 중학교동안은 공부가 아닌 암기만 했을 뿐이다.
어른이 되면 끝날 줄 알았다. 시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노르웨이 그림책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 가르만의 걱정스러운 표정 가득한 표지로 시작한다. 마침 할머니 셋이 가르만의 집에 놀러 왔다. 가르만은 겨우 여섯 살이지만, 할머니만큼 키가 크다는 표현이 나온다. 왜 이런 표현을 했는지 책을 덮을 때쯤 작가의 영리함에 감탄이 나온다. 그림책에는 노르웨이에서 쓰는 재미나 표현이 많이 나온다. 정원을 예쁘게 가꾼 엄마에게 손가락이 녹색이라며 칭찬한다. 화포를 잘 가꾸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쓴단다. 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심란한 가르만의 기분을 뱃속에서 나비들이 팔랑거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설레거나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가리킨. 여섯 살 가르만은 학교에 가는 것이 겁난다. 할머니도 겁이 나는 것이 있단다. "나도 겁이 난다. 곧 외출할 때마다 노인용 보행기를 써야 할지도 몰라." 나이 듦이 서글프려 할 때 여섯 살 가르만의 배려 덕분에 웃을 수 있다. "내 스케이트보드를 빌려 드릴게요." 유쾌한 할머니들과 천진난만한 가르만의 대화는 자칫 무거워질 수만 있는 내용에 미소 지으며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 치매등.
학생 때 가장 겁이 났던 건 시험이었다. 겁이난 다고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더니 대학 입시, 취업 시험, 육아 후 다시 일을 시작하는 요즘도 면접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겁이 난다고 달아나면 회피일 뿐 직면해야 될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 큰 덩어리가 되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사회에 이제 막 한 발을 내디디려 하는 가르만과 죽음의 문턱에 가까운 할머니들과의 대화는 누구나 겁난다는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대를 아우르는 그림책 이야기
나에게 겁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퇴직한 남편과 하루 종일 붙어있는데 사사건건 참견하는 게 싫었는데 얼마 전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났을 때 꼼짝도 할 수 없는데 옆에 있는 남편이 주물러줬다고 한다. 자식, 친구 다 좋지만 내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이 없었다면 난감했을 거라며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고 말씀해 주셨다. 얼마 전 아이들을 다 독립시킨 분은 아직도 매일 찾아오는 어스름한 어둠이 겁난다고 하셨다. 어렸을 때 맞벌이 부모님이 퇴근하는 저녁에 집안일을 해놓지 않으면 혼났던 기억이 아직까지 있다고. 그때의 막중한 책임감이 아직까지 해가지면 힘들다고 하셨다. 반려묘와 함께 사는 분은 아직 어린 아기 고양이지만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며 죽을까 봐 겁이난다고 했다.
8, 9살 어린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엄마, 아빠등 가족이 죽을까 봐 겁이난 다고. 누군가의 보호아래 크고 있는 아이들에게 양육자의 역할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아빠나 엄마가 출근할 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까봐, 운전하는 엄마가 교통사고가 날까 봐, 할머니가 아파서 돌아가실까 봐 겁이난다고.
어른들도 겁이 난다. 어른이 된다고 괜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