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

꿈처럼 찾아와 사라진 나의 아이에게(20)

by 생각많은인프제


비행장 한쪽 벽면을 채우던 바람병은 어느덧 둘 데가 없을 정도로 많아졌어. 얇은 구름의 계절이 지나 두터운 구름이 올 때까지 바람병은 계속해서 쌓여만 갔고, 우체통의 색도 여전히 그대로였어. 안내자님이 우리를 잊은 건 아니겠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너무 지쳐서 편지 보내는 걸 잊어버리신 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어?

우체통이?

무지개빛으로 빛이 나고 있어! 안내자님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나봐.


‘루미에게.

작고 사랑스런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매일 정성들여 창가를 닦고 작은 담요를 데웁니다.

가장 밝은 등불이 켜진 창가에서 만나요. 오래도록 이 날을 기다렸답니다.

지구에서, 오래 기다리는 일을 잘 하는 안내자가.’


‘모모에게.

가슴 뛰는 이 날을 기다리며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며 아기 옷을 만들었어요.

우리에게 오는 길, 길을 잃지 않도록 매일 빵을 굽고 있어요.

퐁신퐁신하고 몽글몽글한 빵 냄새를 따라 우리 함께 만나요.

모모를 기다리며 오늘도 빵을 굽는 안내자가.’


“모모야! 우리의 편지야! 우리 같이 안내자님께 날아갈 수 있게 되었어.”

“이런 날이 오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 안내자님께 갈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한데 이제 너와 헤어져야 하네.”

“우리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지구를 구경하고, 같이 출발해보자.”


비행장 구름 가장자리에 앉으면 저기 아래에 있는 반짝이는 지구가 아주 잘 보여서 항상 모모랑 한참을 구경하곤 했어. 어딘가를 비추고 있는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거렸거든. 어떤 불빛은 식탁 위에, 어떤 불빛은 창가에, 어떤 불빛은 어두운 골목길에, 어느 불빛은 버스 정류장에도 있었어. 그렇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안내자님이 손을 흔들고 계시는 것만 같았는데.


다음 날, 구름마을에 부는 바람은 보드라웠어. 마을을 떠나 안내자님께 가는 날이 나에게도 찾아올 줄이야. 정말 믿을 수 없었어.


“루미, 모모! 드디어 학교를 떠나 안내자님께 가는 날이 왔구나. 정말 축하한다.”

“선생님, 저는 아직도 많이 서투른걸요? 제 날개가 너무 작아서 안내자님께 무사히 도착할 수 없게 되면 어떡하죠?”

“선생님, 저도 여전히 기우뚱거리며 나는데 날다가 이상한 곳에 가게 되면 어떡해요?”

“선생님이 그동안 했던 이야기를 언제나 기억하렴. 안내자님은 너희를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신단다. 서툴러도 괜찮아. 조금 느리게 도착해도 괜찮단다. 너무 힘들 땐 바람구슬을 하나씩 꺼내보렴. 안내자님이 계시는 곳으로 바람이 불거야. 그렇게 서툰 대로, 느린 대로 안내자님께 날아가면 돼. 천천히, 잘 가면 돼.”


선생님은 바람병에 편지를 넣고 목에 걸어주셨어. 안내자님으로부터 받은 편지도 잃어버리지 않게 품안에 잘 넣었지. 안내자님께 받은 편지에선 잉크 냄새가 짙게 났고, 그 냄새는 마음이 따뜻해질 때 나는 냄새와 너무 닮아 있었어.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야. 잘 날기 위해선 무엇을 먼저 해야 한다고?”

“숨 크게 들이마시기요.”

“그래, 안내자님이 계시는 곳에 착륙할 땐 무엇을 해야 하지?”

“날개를 접고 기다림의 숨을 쉬면서 안내자님을 기다려요.”

“마지막으로, 길을 잃을 것 같을 땐 어떻게 하라고?”

“안내자님의 편지가 길을 알려 줄 거예요. 편지가 가장 빛나는 불빛으로 안내해줘요.”

“그래, 너희 모두 학교에서 배운 걸 잘 기억하고 있구나. 이제 출발하자.”


긴장감에 목에 걸린 바람병 마개만 만지작거리는데, 모모는 평온한 표정으로 왼쪽 날개깃을 조심스럽게 빗고 있었어.


“우리 오늘은 멋지게 날아보는 거야.”


톡, 톡.

손등으로 한번, 손바닥으로 또 한 번.

톡, 톡.

마지막으로 어깨를 부딪혀본다.

준비, 완료. 마음도, 완료.

연습한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용기소리들이 들릴 때까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사락사락.

톡, 톡.


용기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해. 이제 힘껏 나는 거야!


처음이야. 내 작은 날개가 힘을 내고 있어. 하늘을 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어. 어? 저기 아래... 반짝거리는 빛이 보여. 안내자님이 계시는 곳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가까워질수록 빛은 더 크고 환해져서 눈이 부셔. 안내자님이 작은 담요를 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담요 한쪽엔 자수로 내 이름이 담긴 이름표가 있어. 내가 만날 안내자님은 정말이지 좋은 분일 것만 같아. 이제 배운 대로 기다림의 숨을 쉬는 거야. 안내자님이 안아주실 때까지.


창문이 열리고, 안내자님이 따스한 손길로 나를 안아 담요로 덮어줬어. 날개를 접어 안아주는 안내자님의 손길은 정말 따뜻하고 너무 다정했어. 나는 항상 크고 풍성한 깃털의 날개를 가진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날개가 작으니까 안내자님의 손길이 더 잘 느껴지는 거 있지?


“마침내 왔구나. 우리는 언제나 여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안내자님은 목에 걸려 있는 바람병에서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어. 편지를 꺼내는 순간 병에 남아있던 바람구슬들이 저 멀리 날아가며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왔어. 살랑이는 바람을 따라 불빛이 일렁이고, 안내자님의 손길은 포근하기만 해서 점점 눈이 감겼어.


‘안내자님, 저희 마을에서 가장 큰 사랑을 가진 아이를 내려 보냅니다. 작고 소중한 아이입니다. 조금은 서툴러도 사랑스럽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따뜻하게 품어 사랑으로 키워주세요.’


매번 기우뚱하게 날던 모모도 잘 도착했겠지? 모모도 안내자님을 만나 이렇게 따뜻한 품을 느끼고 있으면 좋겠다. 모모가 항상 얘기하던 대로 말랑 퐁신한 안내자님이었으면.


‘모모에게.

지구에서 만난 안내자님은 정말이지 너무 따뜻하고 다정한 분이었어. 날개가 작아 언제 나 우당탕탕 했던 건 안내자님의 손길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였나봐. 너도 지금쯤 안내자 님께 도착했겠지? 말랑하고 퐁신한 빵 굽는 냄새가 여기서도 맡아지는 것 같아. 언제나 너를 사랑으로 응원할게.’


‘루미야, 나 모모.

너도 안내자님께 잘 도착했지? 나는 언제나처럼 기우뚱하게 날다가 이상한 곳에 떨어질 뻔했지 뭐야. 네가 보고 있었다면 아마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새빨개졌을 텐데. 바람구슬이 아니었으면 안내자님께 도착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 마지막 남은 구슬은 너와의 비행을 떠올리며 꺼냈어. 그러자 안내자님이 계신 곳으로 바람이 확 불더라. 드디어, 안내자님이 기다리고 있는 창가에 도착할 수 있었어.


안내자님은 나를 기다리며 매일 빵을 구우셨대. 너무 늦게 도착한 게 아닐까 걱정도 많았는데 창문 아래 하얀 밀가루가 송송 내려 앉아있는 걸 보니 안내자님이 이정표처럼 뿌려두신 것 같아. 오븐에서 나온 따뜻한 공기와, 퐁신퐁신하고 몽글몽글한 빵 냄새가 나를 감쌌어. 날개를 감싸 안는 안내자님의 손길은 투박했지만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지.


너의 엉뚱함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 나도 언제나 너를 사랑으로 응원할게.’

[오늘의 비행일지

오늘의 장면: 살랑이는 바람, 따뜻한 손길, 빛나는 불빛.

오늘의 문장: 오래도록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오늘의 비행일지

오늘의 장면: 퐁신퐁신 몽글몽글 빵 냄새.

오늘의 문장: 안내자님께 오길 잘했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오늘도, 잘 왔다. 모모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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