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된 사소한 걸음이 알게 해 준 것
“일단 나가서 걷기라도 하세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뻔한 말. 생각이 많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전형적인 얘기지만, 내 경험상 진짜 맞다. 일단 나가서 걷기라도 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갔던 시절이 있었다. 나를 찾아주는 곳보다 외면하는 곳이 더 많았고 쫓기듯 마음이 급했고 나의 존재보다 쓰임이 더 중요했다. 그럴 리 없지만 그때는 삶이 영원히 그 시기에 멈춰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잠에서 깨면 아침이 끝나있었고 대충 끼니를 때웠다. 배만 채우고 다시 낮잠을 자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늦은 오후 그제야 하루가 시작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뇌하며 괴롭게 밤을 보냈다. 일부 생산적인 행위들은 대체로 새벽에 이뤄졌고, 가끔은 해가 뜨기 직전까지 울다가 지쳐 잠들기도 했다.
망가진 일상의 패턴은 감정도 빠른 속도로 장악해 버렸다. 불안과 우울에 지배되어 기분의 주체를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된 후로는 가진 능력을 의심하고 모든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이 시기를 벗어나야 했다. 악을 써서라도 달아나야 했다.
한 줄기 빛 같은 정신이 들었던 어느 시점에서 생각해 낸 것이 ‘산책’이었다. 이것만, 딱 이것만이라도 매일 꼭 하자. 아침에 일어나서 걷고 오기. 딱 이것만 하고 와도 충분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새벽에 조금이라도 더 잤다.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것만은 꼭 하기로 했으니까 꾸역꾸역 눈을 떴다. 그리고 잡념이 삐져나오기 전에 다짜고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 밖으로 나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어떤 이유도 붙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었다.
바깥에 나오면 제일 먼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매일 하니 습관이 됐다. 하늘을 보면 해도 매일 꼭 빛나고 있었다. 해를 보면 실눈을 떠서 빛이 내 눈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아무도 몰랐던 여담이지만 나는 그 시절 이후로 실눈을 뜨고 햇빛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씩씩하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매일 아침 공원에서 걸었다는 시시한 이야기다. 운동화를 갖춰 신고 적당히 빠른 템포로 콩콩 걸었을 뿐이다. 걷고 걷고 걷다 보면, 다리가 아파오고 땀도 찔끔 났지만 머리가 비워지고 감각은 선명해졌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것만 같던 시간을 잠시 통제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중. 매일 아침마다 이 작은 경험을 하고 나면, 바르게 세워진 하루라는 기둥을 곧바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일을 적어도 하나씩은 하게 되는 신기한 현상이 생겼다.
사소한 걸음에 대한 글은 무시받을 수도 있다. 굳이 시간을 내어 걷고 마음을 다잡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발만이라도 내딛는 순간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 걸음으로써 일상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때까지.
미션 : 아침에 일어나서 걷고 오기!